중앙일보
“어느 ‘아프리카계 한국인’의 비애”
2014년 4월 1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필자의 경희대 동료인 에드 리드 교수는 얼마 전 인천공항에서 목격한 광경을 들려주었다. 한 흑인이 출입국 심사장의 ‘한국인’ 심사대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세 명의 한국인이 차례로 그에게 다가가 곁에 있는 ‘외국인’ 전용 창구 쪽에 줄을 서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무척 언짢은 듯했으나 완강히 버티고 서있었다. 이윽고 그가 출입국 심사를 받을 차례가 왔다. 알고 보니 그 ‘흑인’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어엿한 한국인이었다.
한국에서 ‘다문화’는 보통 동남아나 중국 출신의 외국인 아내와 한국 남성이 이룬 가정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릇되게 통용되고 있다. 물론 이들 또한 한국 문화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들 가정만 다문화라고 하는 건 분명 어폐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는 타 문화를 흡수하고 통합할 수 있는 포용적인 문화를 만드는 것을 의미해야만 한다. 다문화의 기반은 외국인들을 수용하고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해외 동포, 입양아 심지어 북한 동포들까지도 끌어안는 포용적인 문명이어야 한다.
국제화가 성공하려면 원래 있던 전통을 현대 사람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가치 체계, 철학, 문학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문화가 싱가포르나 홍콩과 전혀 차이가 없다면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자부심과 사랑을 느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다문화 한국 사회는 이곳을 조국으로 여기게 된 모든 귀화 외국인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화합시킬 기초는 바로 한국 고유의 문화여야만 한다. 외래 ‘선진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한국 사회에서 꽃피우게 하는 것보다 한국의 토착 문화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게 훨씬 타당성 있는 이야기다.
이규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