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원래 마을이었다” 이만열 @ 세바시

2015년 4월 3일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서울은 원래 마을이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 인스티튜트 소장   ‘한국 사람들은 행복합니까?’ 한국에서 살고있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질문입니다. 높은 자살율, 우울증, 고독감..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외국의 사례, 외국의 전문가들을 찾습니다. 하지만 임마누엘 교수는 오히려 한국 사회의 전통 문화 속에 그 해결책이 있다고 말합니다. 서울의 숨은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듯이 그가 안내하는 또 다른 서울의 풍경을 만나봅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서울, 그리고 소중한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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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계를 위해 한국이 할 일” (중앙일보 2015년 04월 25일)

중앙일보

“글로벌 금융계를 위해 한국이 할 일”

2015년 04월 2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인들은 한국이 세계의 양대 금융 세력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지난 60여 년에 걸친 발전으로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미국 워싱턴 중심의 브레튼우즈 금융 체제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사이에서 말이다. AIIB는 미국 중심 금융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AIIB에 가담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지탱하는 현재의 글로벌 무역 체제와 한·미 동맹 덕분에 큰 이득을 얻어 왔다. 게다가 세계은행(WB)의 김용 총재는 한국계다. 하지만 중국은 아시아의 지배적인 경제 강대국이 됐다. 중국은 한국에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다. AIIB는 한국에 견딜 수 없는 유혹이다. 한국 기업들은 AIIB를 통해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세력 중에서 한쪽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비극’이나 딜레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런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만 한다면,한국의 미래를 기다리는 것은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 금융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국가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난 50여 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국은 AIIB의 미래를 규정할 수도 있다. AIIB가 긍정적인 길로 접어들게 해 새로운 글로벌 제도로 발전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한국이다.

한국은 인천에 녹색기후기금(GCF)의 본부를 유치했다. 한국은 그래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GCF라는 새로운 글로벌 금융 기구는 발전의 본질 그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경제 성장의 정의에서 발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GCF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을 보완하는 새로운 금융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들 국제기구가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변모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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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서울: 방문자에서 시민으로” (허핑턴포스트 2015년 4월 24일)

허핑턴포스트

“내가 경험한 서울: 방문자에서 시민으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2015년 4월 24일

 

내가 경험한 서울 | <1> 방문객에서 거주자로

 

내가 서울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91년 2월의 어느 흐린 날 오후였다. 기내 서비스로 제공된 치약처럼 생긴 튜브에 들어 있는 빨간색 매운 소스와 야채가 담긴 한 그릇의 밥이 날 당황스럽게 했다. 한국 사람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넥타이에 넓은 깃의 옷은 1970년대 어디선가 막 튀어 나온 것 같이 기묘했고 한국 여성들의 진한 눈 화장과 밝은 원색의 옷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내려 다 본 서울은 넓은 콘크리트 표면에 빠르게 나타나는 5층짜리 건물들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나는 일본의 거품 경기가 그 정점을 찍고 있던 시기에 도쿄에서 대학원생으로 4년간 생활했다. 당시 난 도쿄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대도시의 생명력을 즐기고 있었다. 아오야모 길에 즐비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세련된 옷차림의 일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들의 새로운 세계적 영향력을 흥분된 목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당시 도쿄는 미국 내 어느 도시들보다 시각적으로 더 대담했고 커피는 더 맛있었으며 대화는 더 활기찼다.

상대적으로 난 서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동안 내가 서울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학생들이 머리에 빨간색 띠를 하고 거리에서 경찰과 싸우고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서로 싸우는 도쿄보다 원시적이며 암울한 도시란 느낌을 받았다.

국가로서의 한국은 현대 국제 정치에서 각주로 가끔 언급되는 것이 다였다. 또한 “동아시아: 그 전통과 변화”라는 이름의 동아시아 연구 교과서(하버드 에드윈 라이셔, 앨버트 그레이그, 그리고 존 페이뱅크가 편집)에서 내가 배운 한국은 중국 문화가 아주 조금 변화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솔직히, 예일 동창생인 우이찬이 자신의 결혼식에 날 초대하지 않았다면 서울을 방문하기 위해 굳이 비행기를 타진 않았을 것이다. 우는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는 최고의 친화력을 가진 미국 교포로 학부에서 일본어를 같이 공부한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그는 나보다 훨씬 큰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일본에서 일본어를 같이 공부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일본어를 연습하고 자주 같이 술을 마시곤 했다. 우는 연세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갔고 거기서 사려 깊은 한국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서울에 도착한 나를 환영해준 김포공항은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아시아 기능주의의 전형이었다. 타이페이, 자카르타와 쿠알라룸푸르 등 빠른 속도로 건설되는 아시아의 다른 대도시 내의 시설과 같았다. 급조된 김포 공항 터미널에는 과거의 농경사회를 뒤로하고 고급 잡지에서 보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산업화된 미래를 만들겠다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서울로 가기 위해 탄 셔틀버스는 갈매기 떼로 뒤덮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지나갔다. 물론 내가 본 것과 같은 쓰레기 매립지는 도쿄에도, 그리고 뉴욕에도 존재할 것이다. 나는 고속도로 옆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지 모습에 당황하면서 한편으론 요란하지도 꾸미지 않은 서울이란 도시에 조금씩 흥미가 느껴졌다.

서울에서 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도심 속에서 짐을 가득 실은 트럭 사이를 겁도 없이 요리조리 피해 운전하는 택시 속에서 난 나도 모르게 택시 앞 좌석 등받이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내가 받은 서울의 첫인상은 도쿄보다 조금은 더 거칠고 투박하며 무례한 듯했다. 당시 난 도쿄가 갖고 있는 우화함과 엄격한 품질 기준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서울에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품질을 요구하는 도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콘크리트를 아무렇게나 부어 거칠게 만들어진 계단들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낸 3일 동안 난 표면 아래 존재하는 서울의 과소평가된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식은 시청 근처에 위치한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렸다. 이 현대적인 호텔은 일제 강점기 거리를 향해 서 있던 거대한 로마네스크 빌딩 출입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주의 깊게 꾸며진 내부 장식 덕분에 과거의 유물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추웠지만 다행히, 나는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주위를 돌아보고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서울 시민들이 낮은 철제 의자에 앉아 순대, (작은 조각의 떡이 매운 고추 국물 속에 잠겨있는 )떡볶이, (빵 가운데 검은 설탕이 들어 있는)호떡, (햄과 야채를 밥으로 싸고 그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김으로 싼) 김밥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포장마차를 여러 개 지나쳤다.

서울의 공기에는 알 수 없는 설렘이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블라우스와 양말을 놓고 입씨름을 하는 재래시장에서 느낀 일종의 자유로운 생명력은 나를 점점 더 매료시켰다. 남북으로 나 있는 세종로의 양 쪽은 서울에서 가장 못생긴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사관을 비롯하여 큰 콘크리트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서양식 건물 뒤에서 우연히 발견한 골목길에서 오래된 나무로 틀이 짜인 사각형의 흰색 석고 벽을 품은 한국 전통 가옥인 한옥을 만났다. 절제된 우아함과 세련된 비대칭 감각을 갖고 있는 한옥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금이 간 나무 대문 사이로 보이는 정원은 송나라 시대의 최고의 건축물과 같이 인간이 만든 구조와 자연 환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한국 정원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세심하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정원이나 분재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듯 한 외관에도 그 아름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몇 시간 자유롭게 서울을 구경하자 점점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도교의 미츠코시 이세탄 같은 대형 백화점 지하에는 식당가와 식료품 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상사에게 새해 선물용으로 적당한 잘 길러진 멜론을 수백 달러에 판매한다. 난 한국의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일본과 비슷한 스타일의 식당가를 찾았다. 그 중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두와 템프라 스타일의 튀긴 고기와 야채를 주문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깔끔하게 회색 옷을 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쪽을 지고 흰색 모자를 쓴 중년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음식을 제공하는 동안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도쿄에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물론 나는 한국어를 몇 마디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글 설명서를 훑어 보느라 바빴다. 3명의 아줌마들은(중년 여성) 나와 내가 하는 공부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정중한 톤으로 말하는 일본 여성들에게 익숙해 있던 내게 한국 아줌마들의 관심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영어, 일본어, 한글을 비롯해 얼굴 표정, 그리고 단어를 썩어가며 내가 한국에 온 이유와 내가 하는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였다. 아줌마들은 겉으로 보이는 내가 아닌 나란 인간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서울이란 대도시 속에서 마을이나 작은 공동체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발견한 것이다. 롯데호텔의 외관은 도쿄처럼 완벽하게 세련된 것은 아니지만 인내심을 갖고 내게 음식을 설명하는 아줌마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1970 년대 새마을 운동은 한국 전통 마을의 삶 대부분을 없애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마을이란 개념을 제거하기는 어렵다.

서울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정책적 지시에 따라 진정한 “건설 산업 단지”인 거대한 콘크리트 대도시로 변모했다. 서울이 파리나 비엔나와 같은 미적 매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뜰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에 김치를 담그는 여인 또는 단감을 끈에 메달아 처마 끝에 걸면서 자식들의 결혼이나 고등학교 시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서 마을 공동체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식당 아줌마들의 따뜻한 말에서, 택시 운전사가 보여준 관심에서 그리고 신문 헤드라인과 관련하여 호텔 웨이터가 보여준 동정심에서 서울이란 도시 표면 아래 존재하는 강력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호텔 내 작지만 절제된 품위를 품고 있는 마당에서 발견한 하늘로 젖혀진 3단 처마의 팔각정 원구단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원구단 모습은 중국 제국 후반의 정원 건축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지만 덜 가식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제단은 분명히 자금성에 있는 무언가를 단순히 본 따 만들었다기 보다는 서울의 급속한 현대화 속에 묻혀 있는 또 다른 한국 전통에 대한 단서였다.

원구단은 나의 고고학에 대한 흥미를 자극했다. 나는 원구단 옆에 서있는 청동 표지판의 건축물에 대한 간단한 영어 설명에 집중했다. 원구단이 1897년 고종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며 한국의 황제로서 (무자비한 식민지 확장시기에 한국의 문화와 지정학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종 스스로 지위를 황제로 승격시켰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지 않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종 황제는 고려 시대 때부터 시행되었던 하늘에 드리는 제사 의식의 재현을 통해 서울의 문화적 자신감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사실 이 의식은 1454년에서 1464년까지 조선 왕조 세조에 의해 짧게 재현된 바 있다. 이후 조선 왕조보다 24년 먼저 실시된 중국 명조의 문화적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이후 중국에 조공을 받치게 되었다.

고종 황제는 누구이며 그는 왜 원구단 건설을 통해 왕국을 제국으로 변화시키려고 했을까? 19세기 말 고종의 아버지는 왜 1592년 일본 침략으로 불타 폐허가 된 서울 북쪽의 경복궁을 재건했을까? 나는 서울 속 궁궐들을 방문하면서 서울이 단순히 1970년대와 1980년대 (타이페이 또는 마닐라와 유사한) 급속한 발전의 산물이 아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울에는 일본의 에도 시기(현대도쿄)가 시작하기 훨씬 전인 1390년 처음 디자인된 걸작들이 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이 갖고 있는 이러한 심층구조는 아직까지도 살아있다.

경복궁 앞 광화문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14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궁 북쪽에 자리잡은 북악산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과 그 뒤의 삼각산의 (3개의 뿔이 있는 산) 기가 흐르는 통로 역할을 했다. 원구단을 본 이후 종로를 바라보며 난 서울이란 도시 표면 아래 묻혀있는 역사적 윤곽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이 기의 흐름을 끊고 풍수적 순환을 방해하기 위해 광화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 자만심에 가득 찬 조선총독부를 건설하였지만 서울이란 고대 도시가 갖고 있는 얼은 살아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길을 걸으며 아스팔트, 콘크리트, 철골, 그리고 유리에서 고대 수도가 갖고 있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 시민들도 잘 모르는 서울 도로 중에는 10세기에 만들어진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을 처음 방문하고 20년이 지나 2011년 난 관광객이 아닌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 다니는 아저씨 (중년의 한국 남성)가 되어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침이면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로 출근하는 서울 시민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작은 도시였던 서울이 빠른 속도로 세계 문화, 교육, 금융 그리고 정치의 중심으로 진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서울의 변화는 미국에 있는 동료나 한국인 스스로도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을 많이 넣은 커피만 팔던 서울의 커피숍 (다방)들은 카페로 변모했고 아시아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커피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화랑이 도시 곳곳에 버섯처럼 솟아났다. 종종 화랑이 자리잡은 장소들은 첫 눈에는 별 재미가 없는 지역으로 과연 이런 곳에서 갤러리가 될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탁소와 식료품점 사이에 끼어 미묘하게 아이러니한 작품을 소개하는 화랑을 발견할 때마다 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난 서울 같은 도시를 본 적이 없다. 서울 어디선가는 세계적 수준의 낙서 예술을 만날 수 있고 암호 같은 상형 문자와 이미지가 그려진 작은 크기의 이상한 포스터(2 × 2 cm)가 여기 저기 나타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겉으로는 비슷하게 옷을 입은 직장인들과 20층 아파트에서 실질적으로 아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들이 보여주는 매우 획일적인 문화 아래에 활기 넘치는 창조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루한 교육 시스템이 창조한 상상력이 없는 직장인들과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자살 율에도 불구하고 서울 안에는 넘치는 창조력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창조적인 래퍼를 비롯하여 에너지 넘치는 댄서 그리고 혁신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단조로운 벽돌 건물과 한국의 생산품으로 유명한 반도체처럼 디자인된 서울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처럼 동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서울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서울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외국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서울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활력이 넘치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만약 내가 10년 전 서울이 세계의 문화 중심지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었을 것이다.

물론 서울이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직은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은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년 전 한국에 일본 만화가 넘쳐날 때 정부는 일본 만화 수입을 제한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서울은 급격히 늘어나는 웹툰 산업(인터넷 만화)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아시아에서 만화의 흐름을 바꾸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웹툰의 발전은 한국에서 만화가 완전히 소외되었다고 여겨졌을 때 시작되었고 5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은 업계의 주요 국가로 떠올랐다. 젊은 바둑(일본에서는 “고”라고 함) 고수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겪는 한국 기업체 내의 일상의 진부함과 기업 문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것 같은 직장인들의 인간관계를 다룬 웹둔 ‘미생’은 큰 인기를 얻었다. 미디어 거인인 다음을 통해 작품을 발표한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서울에 웹툰 허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미생을 내 개인 블로그인 “Circles and Squares,”에 소개했을 때도 블로그를 운영한 지난 5년 동안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히트를 받았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형태도 크게 변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미군이거나, 선교사 또는 영어 교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군 기지가 있는 이태원 근처를 주로 방문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에는 도시가 주는 기회를 찾아 세계 각지에서 온 작가, 예술가, 기업가, 그리고 과학자들이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란 도시 표면 아래 존재하는 잠재력과, 서울의 문화적 유연성 그리고 그 생명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미군 기지에서 멀지 않은 해방촌에 살았다. 그러나 군기지 자체가 평택시로 이전할 예정이어서 해방촌 인근에는 새로운 예술 카페와 유기농 채소를 원료로 한 수십 가지 막걸리 샘플을 맛 볼 수 있는 막걸리(한국의 전통 쌀 와인) 바를 포함하여 다양한 상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지역은 1980년대 하이트-애쉬버리와 매우 유사한 외국인 거주지가 되어가고 있다.

외국인 친구들은 서울 시민들의 편협함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상투적으로 묻는 김치를 좋아하냐 또는 언제 본국으로 돌아가느냐와 같은 질문에 불편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편협함에 불평하는 만큼 한국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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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把首尔打造成智囊团中心” 中央日报 2015年 4月 4日

中央日报

“把首尔打造成智囊团中心”

2015年 4月 4日

贝一明

 原文

 

目前智囊团(think tank)在全世界范围成为政策讨论的核心空间,智囊团是专家、政府和民间部门代表以及市民讨论社会、经济问题的平台。位于华盛顿的布鲁金斯学会以及传统基金会以一直以来讨论政策的传统而引以为豪。最近在首尔,峨山政策研究院、东亚研究院、外国人设立的智囊团等大大小小的智囊团正在日益凸显。

越来越多的发展中国家借鉴韩国的基础设施、制造业技术、电子政务等作为标杆进行学习,那么首尔的智囊团群体能否成为管理(governance)革命的核心呢?特别是鉴于韩国世界一流的商业、教育作用,这点十分明确。但若想实现这一计划,需要迈出重要的几步。

第一,需要包容年轻人。如果去参加智囊团活动会发现没有40岁以下的年轻人。发言人一般是60~70岁。活动中的年轻人均为实习生,对讨论不起任何作用。忽略年轻人的需求是十分严重的错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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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统一不是选择的问题” 中央日报 2014年 12月 13日

中央日报

统一不是选择的问题

2014年 12月 13日

贝一明

링크 

 

之前曾在课堂上对韩国的未来和统一进行过讨论。当笔者问道前往统一的正确之路是什么时,一位学生似乎充满自信地回答称“考虑到巨额统一费用,我们这一代不会选择统一”。

下了课后,笔者一直在反复思考学生所说的话。是否很多韩国人都像这个学生这样认为历史会让我们进行这种选择呢?但是有一点明确的是,即便是我们对命运的选择有好几个,但是统一最终不是选择的问题。

关于统一的不朽名言可以在中国的《三国演义》序文中找到。该著名历史小说是在国家危殆的汉朝末期写成的,其序文中有这一句话,“分久必合, 合久必分”。

这句话暗含着国家的统一和分裂是本质上无法避免的趋势。那么,只是有成功的统一和失败的统一之分,统一本身并不是可选择的对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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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사이버 공간 공화국’을 위한 6자회담”

 

2015년 3월 14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링크 

 

아시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고국이 아닌 땅에서 보낸다. 확장 일로인 ‘사이버 공간(cyberspace)’이라는 땅에서다. 특정 국가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사이버 공간에 접속하는 것은 맞지만 사이버 공간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가 공유하는 영토다.

근대 세계가 시작된 것은 17세기다. 스페인·포르투갈·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대탐험의 시대에 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의 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들 국가가 수립한 전 세계적 생산·분배 네트워크는 그들에게 압도적 우위를 선사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 세계적 제조·분배 체제의 청사진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랐다. 전과는 달리 심각한 결과를 낳지 않고서는 자원을 개발할 수 없다. 세계 인구가 90억 명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식량과 물을 확보하기 위해 허둥지둥 서로를 밀치는 경쟁에 나서야 한다.

사이버 공간은 우리에게 팽창, 탐험, 자아 완성을 위한 새로운 프런티어를 제시한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인 땅이다. 이 땅은 자신을 정의하고 체계화하라고 고함치듯 요구한다. 인터넷이 창출하는 가상 공간은 거의 무한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또 인터넷·인트라넷 네트워크의 다양한 정보 출처들을 상호 연결한다. 그 결과 모든 개인의 잠재력은 엄청나게 확장된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향후 몇 년 안에 사이버 공간은 문자 그대로 생활 공간이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이라는 공유지에서 빌딩을 넘나들고, 산꼭대기에 오르고,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탐험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은 아직 ‘석기 시대’다. 관심과 우려가 비슷한 전 세계 사람이 모여들면서 점점 커져가는 온라인 공동체는 사이버 공간을 가장 가치 있는 ‘부동산’으로 만들고 있다. 사이버 공간의 ‘창조적 계급’이 새로운 체계와 서비스를 위해 어떻게 협업하느냐에 따라 미래 경제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이버 공간의 미래를 위한 정책 협의가 미흡하다. 최근 소니 해킹과 같은 사이버 테러가 빈발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관할할 글로벌 스탠더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치 남극대륙을 공동 관할하듯 말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규칙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이버 공간을 위한 규칙을 제정해야 새로운 제도와 제품을 창출하는 시민들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이 신천지에서 그들이 잠재력을 최대로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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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는 ‘위험한 동네’인가?” (중앙일보 2015년 2월 14일)

중앙일보

“동북아는 ‘위험한 동네’인가?”

2015년 2월 14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링크 

 

미국 잡지들을 읽을 때마다 동북아 지역을 줄곧 ‘위험한 동네’로 표현하는 통에 깜짝 놀라곤 한다. 십중팔구 호전적인 북한이나 한•중•일 간 역사•영토 분쟁 탓에 엄청난 리스크가 수반되는 지역이란 의미가 함축돼 있으리라.

일부 기사는 이미 동북아의 위기를 자명한 진실처럼 다룬다. 예컨대 유럽의 선진국들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지역기구가 정착돼 있다. 이와 달리 동북아는 다원주의 기반이 워낙 허약하다 보니 노골적으로 리스크가 많은 지역까진 아니어도 어딘가 미성숙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아시아 공동사회’를 갈망하는 한국의 한 외교관을 알고 있다. 일전에 그와 차를 마시며 담소하던 중 그가 전해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그 외교관은 최근 유럽연합(EU)의 한 외교관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북아가 유럽 수준의 통합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 외교관은 퉁명스럽게도 이런 답변으로 질문자의 의표를 찔렀다. “무엇보다 유럽이 저지른 실수를 절대 되풀이하지 마세요.”

전후 유럽은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과거의 갈등을 극복하고, 공동시장을 창설하고, 전 부문에서 협력의 새로운 틀을 짜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 다. 나 자신도 유럽이 거둔 이런 성취에 일정 부분 자부심을 느낀다. 바로 나의 어머니가 유럽의 완벽한 통합을 추진해온 룩셈부르크 출신일 뿐 아니라 우리 가족 중 일부는 실제 룩셈부르크 정부에서 오랫동안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은 우리가 동북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유럽 지역기구들조차 해결할 엄두도 못 내는 힘든 숙제들을 안고 있다. 그중 하나가 그리스 총선에서 새로 집권한 시리자 당이다. 시리자를 주축으로 한 그리스 연립정부는 국가부채를 둘러싸고 유럽중앙은행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유럽의 가장 약한 고리다. 서로 다른 나라들 간의 경제에 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와 이로 인한 지역연대의 균열 가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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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스티튜트 제 2 회 동아시아 청소년 글로벌 리더쉽 포럼 (2015년 2월 15일)

The 2nd East Asia Youth Leadership Forum

제 2 회 동아시아 청소년 글로벌 리더쉽 포럼

“Social Networks and the Potential of Youth”

소셜 네트워크와 청소년의 가능성

 

 

  1. 행사 소개

21세기에 들어서서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점차적으로 일원화되는 세계 속에서, 증가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과 함께 현재의 세계가 처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주제로 토론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접하고 긍정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을 도모함으로써 더욱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글로벌 청소년 포럼이다.

 

  1. 행사 취지
  2. 실제로 국제적인 토론행사를 통해 학교에서는 다룰 수 없는 최신의 이슈를 학습하고 사고하고 개인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짐
  3. 세계적인 학자들의 강의를 온라인 오프라인 상으로 직접 경청할 수 있으며, 세계의 다양한 최신의 학문과 국제적으로 이슈화되는 사건과 사고들을 토론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는 방법을 배움
  4. 또한 삼국의 청소년들이 포럼을 통해 우정과 친목을 다짐으로서 국제적인 안목을 기르고 국제적인 청소년 네트워크망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

*이러한 주요 목적을 가지고 국내외의 학생들을 국제기구 진출 및, 정치, 경제,학문, 예술, 경제, 외교등 각 분야에서 넓은 국제무대로 진출하는 대한민국의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키워내는 한국을 대표하는 청소년 국제 포럼으로 자리잡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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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 한국의 위기” (중앙일보 2015년 1월 24일)

중앙일보

여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 한국의 위기”

2015년 1월 24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링크 

 

끝없이 추락하는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매번 물거품이 되고 마는 괴로운 현실이다.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놓고 한국은 고민하고 있다. 정부는 2006년 이래 100가지도 넘는 정책을 추진하고, 지난 2년간 무려 10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수)은 여전히 1.19명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220위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출산율을 높이려는 정책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들이 위기의 심각성을 몰라 정책적 차원에서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100년 안에 한국이라는 민족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자연히 한국어도 만주어처럼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언어로 전락할지 모른다.

 한국인들이 매우 희박한 북한의 서울 포격 가능성은 거론하면서도 출산율 저하라는 또 다른 심각한 위험에는 완전히 침묵한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낮은 출산율은 반도체나 스마트폰의 경쟁력 하락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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