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일보
“역대 ‘서울시장’은 몇 명일까”
2016년 7월 9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서울특별시청 청사였던 서울도서관에 가보면 게르만적인 금욕주의가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이 건물 3층에는 지난 세기 서울의 발전을 다룬 작은 전시 공간이 있다. 벽면에는 역대 서울시장의 사진과 약력을 적은 패널들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걸려 있다. 이 전시물에 따르면 초대 시장은 1946~48년 재직한 김형민이다. 그전에도 이범승이라는 첫 한국인 서울시장이 있었지만 당시 시정(市政)은 아직 옛 식민 체제를 답습한 상태였다. 현대적인 서울시 행정이 확립되기 전이었다.
서울시장의 수를 광복부터 세는 것은 서울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식민시대 18명의 서울시장(경성부윤)을 포함시킬 수는 없다. 모두 일본인이었던 그들은 식민 착취 정책을 수행했다.
나는 이 시장들의 ‘판테온’이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최초의 ‘서울시장’은 1395년 한성부판윤으로 취임한 성석린이다. 조선왕조에는 수백 명의 ‘서울시장’이 있었다. 권한이나 임기 연한에 있어 한성부판윤을 서울시장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세계에서 몇 안 되는 600년 넘게 지속된 도시의 수장으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
서울시 역사 중에서 551년을 빼버린 결정의 이면에는 어떤 심리가 숨었을까.
깊은 문화적 단절이 서울의 역사를 갈라놓는다. 현대 서울 사람들은 서울의 오랜 역사와 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파리 사람들은 센 강 위에 놓인 다리들의 이름을 안다. 청계천 다리들의 이름을 열거할 수 있는 서울 사람은 소수다. 기념물이나 풍파에도 살아남은 건물의 형태로 과거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흔적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 흔적들이야말로 새로운 서울을 건설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다.
서울은 런던•싱가포르•파리처럼 됨으로써 시민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문화를 창조하려고 한다. 다른 도시가 되겠다는 집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서울역 고가공원 프로젝트다. 나무가 우거지고 예술 작품으로 뒤덮은 공원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모델은 맨해튼에 있는 하이라인 공원이다. 흥미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이 계획은 전적으로 수입한 개념에 따라 네덜란드 회사인 MVRDV가 수행할 것이다.
서울에 진짜 필요한 것은 ‘맨해튼다움’이 아니라 ‘서울다움’이다. 서울에 필요한 도전은 잠자는 과거 전통을 재해석해 오늘에 맞는 적실성을 찾아주는 것이다. 서울의 뿌리를 암시하는 새로운 도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서울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유리와 강철로 서둘러 지은 사무실 빌딩과 아파트가 옛 골목을 완전히 무시한다. 건물 외장과 내장은 전통 건축에 대해 짐작조차 못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