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외교원: “다른 대한민국: 외국인이 본 한국의 전통문화와 공공외교” 특강

국립외교원은 국제정치 분야의 저명한 학자 및 전문가를 초청하여 식견을 경청하고, 국내 전문가 및 국민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

련하고자 ‘국립외교원 강연(KNDA 렉처) 시리즈’를 개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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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4(금) 14:00~15:30 국립외교원 2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되는 ‘제4차 국립외교원 강연(KNDA 렉처) 시리즈’에서는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가 “다른 대한민국: 외국인이 본 한국의 전통문화와 공공외교”를 주제로 강연할 계획입니다.

ㅇ 이번 강연은 신동익 외교안보연구소장의 사회로 진행되며, 이만열 교수의 강연에 이어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ㅇ 아울러 학계 전문가, 대학·대학원생, 일반 국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 국립외교원은 앞으로도 국립외교원 강연(KNDA 렉처)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다양한 외교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 증진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링크 

“한국학과 한국의 공공외교” (중앙일보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한국학과 한국의 공공외교”

2016년 10월 1일

 

임마누엘 페트라이쉬

 

내가 1983년 예일대에 입학했을 때 아시아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결국 중국어를 전공하게 됐고 4학년 때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예일대에는 한국학 프로그램이 없었다. 오늘날 예일대에는 한국어 프로그램이 있지만 학생들은 한국학을 전공으로 삼을 수 없다. 교수가 한 명도 없다. 한국에 상당한 손해다. 많은 예일대 졸업생이 정부나 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들은 학부 때 한국 문학•역사•철학•예술사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다.

최근 ‘공공외교법’이 통과됐다. 한국 정부에 해외의 한국 전문가 부족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외 한국학 연구의 폭과 깊이는 중국학•일본학에 뒤진다. 정부의 지원 자금이 미국에서 한국학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 및 위상 제고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라고 표현된 공공외교법의 목표는 나를 실망시켰다.

내가 중국어•일본어를 공부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 정부의 ‘국가 이미지 제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게 관심은 이 두 나라의 가치, 철학•미학 원리였다. 한국 음식을 홍보하는 것이나 싸이가 하버드대에서 강연한 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장기적인 관심을 키우는 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을 시간의 검증을 받은 가치체계가 아니라 소비를 기다리는 재미(fun)로 소개하는 것은 효과가 훨씬 덜하다. 한국은 노력하면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제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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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를 모르는 환경운동연합?

2016 9 22 저녁 제가 환경운동연합과 지구의벗이 공동으로 개최한 2016 후원의밤: “생명안전을 위한 약속 참석 했어요. 환경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친구들을 만나서 좋았지만, 실망이 많았어요.

특히 그주제: “생명안전약속과 함께 합니다 문제가 많다고 생각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험한 약품을 가습기에 사용을 추천한 영국계 기업 OXY(옥시) 암시하는 표현이고 그행사에서 주로 제품의 안전성에 주목하고 있어요.

제품에 뭐가 들었죠?” 환경운동연합펙트 체크 하세요”  라는 표현도 썼어요.  행사 소개 하는 글은 여기 있어요.

 

이제품에 뭐가 들었죠?” 환경운동연합펙트 체크  하세요

제품안전성이 매우 중요 것이지만 매우 한정 환경 정의 에요.

심각한 환경문제들: 온난화, 사막화, 해수면상승, 바다의 죽음 중에  이런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좁은 환경에만 집작 하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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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 모르는 일본 과 중국”

오늘 교보문고에 가보니까 제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옆에 일본외교관 미지가미 히로시 (道上尚史)씨 (현재 주두바이 총영사) 가 쓰신 책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 과 중국” (중앙북스 2016년) 이 있었어요. 아직 읽지 못 했짐나 매우 재미있는 책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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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화 정치사회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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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上尚史 기타 서적은:

 「日本外交官、韓国奮闘記」 (文春新書)

“한국이 독자적인 안보정책을 표방할 때가 왔다” (중앙일보 2016년 8월 20일)

중앙일보

“한국이 독자적인 안보정책을 표방할 때가 왔다”

2016년 8월 20일

 

 

임마누엪 페스트라이쉬

 

한국은 지금 갈림길에 섰다.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구도를 추종한 덕분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 자체가 점차 양극화됨에 따라 그러한 접근법을 따르는 게 더 어렵게 될 것이다. 현재 안보에 대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관점은 간격이 너무 벌어졌기 때문에 무엇이 미국 정책인지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표방하는 외교정책에 대한 의견은 타협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다수 미국인은 워싱턴의 정책 결정 과정이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않으며 가장 능력 있는 인사들이 배제됐다고 느낀다.

미국의 중동•아프리카•유럽•동아시아 정책은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논란을 부르고 있다. 예를 들면 랜드(RAND)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인 ‘중국과의 전쟁: 생각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생각 ’은 너무나 적대적이고 도발적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공개적으로 이 보고서를 비난하고, 미국 내에서 미•중 협력을 무시하며 위험한 도발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한국은 즉각적으로 국가안보와 지역안보를 위한 비전을 분명히 제시하기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비전은 점점 더 부패의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는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 나올 수 없다. 동시에 한국은 장기적인 안보 정책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아시아의 핵심 국가들과 대화에 착수해야 한다.

 

한국의 안보 정책 제안은 예지력이 있고 영감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유엔 헌장의 원칙에 기반해야 하며 기후변화와 드론•사이버 공격 같은 새로운 기술이 제기하는 점증하는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이 그런 과감한 주장을 펼치면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비판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한국의 국익과 어긋날 것이다. 오히려 한국이 용감하게 글로벌 안보 비전을 제시한다면 한국은 침묵하는 다수가 존중하는 나라가 될 것이며, 미국•일본•중국 등 예상치 못한 여러 나라에서 예상치 못한 친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안보 정책은 정확히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 우리는 총이나 대포 같은 무기가 계속 어떤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상정해야 한다. 하지만 안보 위협의 근본적 변화를 정확히 감지하지 못하고 큰 비용을 들여가며 전쟁에 시대착오적으로 대비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위협에 빠질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우리의 국부(國富)를 확대 투입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후변화는 미래의 분쟁에서 한 요소로 작용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은 안보적 고려의 중심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안보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한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어느 정도까지 빨리 이러한 전환을 달성하느냐에 달렸다. 한국의 제안이 일부 미국 고위 관료를 자극할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면 안 된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가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한국을 더욱 존중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리더십을 발휘해 차세대 무기체계의 점증하는 파괴 잠재력이 미사일•핵무기 같은 무기 개발을 제한하기 위해 우리가 선의의 조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렇게 주장해야 하는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 비용 때문에 그러한 무기체계를 지탱할 자금이 없으며 조약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무기 통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미래 분쟁의 본질을 변화시킬 드론(특히 마이크로•나노 드론)과 로봇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한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벌떼 같은 수많은 소형 드론의 무리는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가 무방비 상태인 우리를 겨냥해 지극히 파괴적인 분쟁을 개시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

사이버 전쟁과 3차원 인쇄도 유사한 도전이다. 우리는 이런 기술을 이차적인 이슈가 아니라 미래 분쟁의 잠재적인 핵심으로 간주해야 한다. 드론과 결합된 사이버 전쟁의 궁극적 의미는 일방이 핵무기가 포함된 상대편의 모든 무기를 접수해 분쟁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수동으로 작동되는 무기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민족국가보다는 세계 곳곳에서 유유상종하는 비국가행위자들이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동아시아 국가안보 정책을 뒷받침한 국가 대(對) 국가 분쟁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을 무시하며 대규모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미래형 안보 접근 차원에서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향해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한국은 군용 에너지를 석유•가스•석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상 운송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에 지극히 취약하게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태양력•풍력 발전 체제를 개발해 전체 군사체제와 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 공급 차단이 분쟁 대응 능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로저 소킨의 영화 ‘짐(The Burden)’이 보여줬듯이 미 군부에서 가장 사려 깊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이 전략적 취약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창의성과 용기로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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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궁궐은 소박하기에 자랑스럽다” (중앙일보 2016년 7월 30일)

 

중앙일보

“한국의 궁궐은 소박하기에 자랑스럽다”

2016년 7월 30일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나는 경복궁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하는 같은 말을 5번이나 들었다. 관광객 중 한 명은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의 웅장한 건물들에 비하면 한국의 궁궐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한국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부끄럽다고 내게 고백한다. 나는 고성(古城) 한양의 도시계획에 대해 한 번도 그렇게 느껴 본 적이 없다.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조선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황제는 무한 권력을 휘둘렀다. 반면 조선 국왕의 권력에는 명백한 제한이 가해졌다. 우선 경복궁, 그다음 창덕궁에 적용된 설계의 목적은 ‘위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지 궁궐을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하거나 왕은 초인(超人)이라는 뜻을 내비치는 게 아니었다. 이름 자체가 접근을 금하는 베이징의 자금성과 달리 한국의 궁궐들은 북촌에 사는 학자 관료의 집보다 많이 크지 않았다. 학자 관료들의 집 또한 평민들이 사는 집보다 훨씬 크지 않았다.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만 봐도 서구에서 극단적인 정치 권력이 물리적 환경에 어떻게 표출됐는지 알 수 있다. 1900년께의 서울 사진을 보여 주면 학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타운하우스나 넓은 대로가 늘어선 당시의 파리와 비교하면 한국이 발전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1860년대에 파리 개조사업을 진행한 조르주 외젠 오스만이 얼마나 지역 공동체에 대해 무감각했는지 알게 된다면 근대 파리의 변화가 무조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서울 궁궐의 소박함은 한국 유교 전통에서 가장 훌륭한 점을 표상한다. 한국의 왕실과 고위 관리들은 행실이 보다 투명했고 백성에게 보다 책임성이 있었으며, 공중에게 대표성을 발휘하는 방식이 보다 인간적이었다.

서울과 베이징의 차이는 14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국을 다스린 강력한 지도자들은 몽골제국 붕괴 이후의 무질서를 극복하고 권위를 확립하려 했다. 중국의 경우 영락제(永樂帝•1360~1424)는 혹독하게 통치했다. 극단적인 조치로 통치자와 시민 사이에 절대적인 거리를 강요했다. 영락제가 확립한 비밀경찰제와 상층부가 비대한 관료조직은 황제에 의한 군주정이 끝날 때까지 중국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영락제의 통치는 유교 전통을 왜곡시켰다. 또 신(神) 같은 존재가 된 황제는 거대한 관료집단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

반면 한국의 세종 대왕(1397~1450)은 시민에 대한 책임성을 그가 생각한 거버넌스 비전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가 상상한 왕은 왕국의 겸허한 종복이었다. 세종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높은 자리에 등용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세종이 평민의 복지를 정부의 최우선과제로 삼았으며 고도의 견제•균형체제를 수립한 것이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통치한 조선은 500년 넘게 생존할 수 있었다.

서울의 궁궐이 작다는 중국 관광객들은 조선 건축의 보다 인간적인 규모가 한국 문화 전통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측면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영락제와 세종은 근대 초기의 제도 문화를 확립한 인물이다. 중국 관광객들 중에서 영락제와 세종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중국 관광객들의 무지를 탓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인 한국 철학•정치•예술•문학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하는 활동이 아주 미흡했다. 예를 들면 세종에 대해 많이 아는 내 중국 친구들은 극소수다. 바이두백과(百度百科)에서 세종에 대한 서술을 읽어 보면 전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지만 세종이 행한 개혁의 많은 부분이 빠져 있고 그의 공헌은 축소돼 있다.

18세기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 대한 바이두백과 항목은 더 심각하다. 다산의 지성사적 공헌은 지극히 짧게 소개돼 있다. 왕양명(王陽明)•주희(朱熹)와 어깨를 견주는 다산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하는 한국인들의 노력은 매우 미흡하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미래 문화적•정치적 위상을 확립하기 위한 싸움은 지극히 힘들 것이다. 결정적 요인은 ‘한국산 스마트폰을 몇 대나 팔았느냐’ 혹은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남성 밴드는 몇이나 되느냐’가 아니다. 한국의 영향력을 좌우할 결정적 요인은 한국 전통에서 발견되는 투명성•책임성 전통을 어느 정도까지 보편적인 모델로 세계, 특히 중국에 제시할 수 있느냐다.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1980년대 한국의 투쟁에 대해 중국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틀림없이 한국의 오랜 투명성 전통과 왕의 권위에 대한 명백한 제약이다. 우리는 한국 유교가 16•17•18세기 선정(善政)에 공헌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교 전통은 한국뿐만 아니라 어쩌면 중국의 미래를 위한 모델이다. 한국은 아마도 그런 차원에서 중국에 영향을 줄 희망이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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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는 춘추관•집현전에서 배워라” (경향신문 2016년 7월 28일)

 

경향신문

“‘싱크탱크’는 춘추관•집현전에서 배워라”

2016년 7월 28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근래 들어 서울에서는 싱크탱크의 중요성이 회자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정책을 보다 현대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요인처럼 다뤄지면서 싱크탱크는 마치 선진국의 반열에 들기 위한 관문처럼 취급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제임스 맥간 교수가 만든 싱크탱크 색인에는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여러 싱크탱크가 들어 있다. 예를 들면 국립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방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그리고 민간 싱크탱크로는 동아시아연구원, 아산정책연구원, 세종연구소 등이 있다.

사람들이 중시하는 이 색인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재정과 인력규모 그리고 주요 기관지에 게재된 횟수다. 그러나 이런 싱크탱크들이 시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지, 그 연구결과는 실제로 건전한 사회 만들기에 효과적인지, 어떤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홍보가 아닌 공동성을 갖고 있는 분석인지에 대한 정밀한 심사는 없다. 물론 국립연구소는 공무원 개개인의 전문성을 위한 교육에 집중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 기후변화, 빈부격차, 빠른 기술발전의 영향에 집중하고 여러 배경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활발한 논쟁은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동아시아연구원 같은 민간 연구소의 경우 결국 재정규모라고 하면 싱크탱크가 기부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민간 연구기관 중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가장 두각을 보이며 여러 전문가 및 정책결정권자들을 초빙해 규모 있는 콘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근래에 나는 이 단체의 총회에 참석했다가 그 분위기가 너무나 폐쇄적으로 변한 데 깜짝 놀랐다.

포럼에서 나눈 이야기는 피상적이거나 의례적이었고, 기후변화나 양극화 심화, 혹은 서구사회에서의 극우세력 대두와 같은 중요한 현안은 다뤄지지 않았다. 젊은 학생이 몇 명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토론에 20대가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아산포럼에 초대됐지만, 내가 아는 서울에 있는 많은 전문가들은 이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해외에서 초대받은 인사들은 우리가 항상 보곤 하는 이들로 구성돼 있었다.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항상 군사동맹이나 자유무역협정 같은 화제만을 강조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되풀이해오던 북한 체제 붕괴와 같은 공허한 이야기만을 반복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이 전문가들이 이미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인정한 미사일방어 기술을 홍보하고,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유일한 접근법인 ‘전략적 무기 제한 협정’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한국 사회의 교육제도에서 학원이 담당하는 기능과 한국 사회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싱크탱크 집단이 하는 기능은 결국 같아지지 않겠는가? 사교육기관인 학원이 한국의 교육제도하에서 그들 스스로의 배만 불리며 교사가 학교에서 실제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주변화시키는 것과, 이런 싱크탱크 집단이 그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정책결정 과정을 민영화시키려고 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민간 싱크탱크들은 그 역량과 전문성의 부족으로 인해 정부관료, 국회의원 및 기타 정치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정부 산하의 연구소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간 싱크탱크가 정부보다 나은 역할을 한다는 건 한국을 보다 나아지게 하기보다는 프로세스의 중대한 요소들을 사유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 이익을 생각하는 싱크탱크 집단에 한국의 미래를 위한 연구를 맡기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한국은 분명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이 필요하며, 그 답은 교육혁신과 더불어 정부기관 내에서의 활발한 논의, 그리고 정부 각 분야 관료들의 의사결정에의 참여권 확대에 있다. 또 전문가 및 비정부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역사에는 춘추관이나 집현전과 같은, 이미 독립성을 갖춘 연구기관의 훌륭한 전례가 있다. 춘추관은 500년이 넘도록 정부 활동을 기록하였으며, 정책영역에서 좋은 전범이 되었다. 집현전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당대의 현안들을 공리적 관점이 아닌 윤리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기관이었다. 한국 역사에는 이처럼 윤리적이며 장기적 안목을 지닌 열린 기관의 전범이 풍부하다. 해외 싱크탱크의 경우, 좋은 사례도 있지만 문제점도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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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사드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 (경향신문 2016년 7월 15일)

경향신문

“슬플 사드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

2016년 7월 1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소식에 나는 무척이나 유감스러웠다. 많은 오해는 있었어도 어쨌든 한·미 군사동맹은 오래도록 북한의 위협에 맞서 공조해왔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도 타당한 논의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배치 결정은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효용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아무래도 잠재적인 경제적 이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종래에는 100여년 전 첫 세계대전의 비극을 불러온 바로 그 양상을 초래한 국제무기상들의 책략과 비슷해 보인다.

우선은 사드 자체가 미사일 방어능력이 의심스러운 구식 시스템임을 지적해야겠다. 사드가 효용이 있으려면 고고도로 날아드는 미사일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다 쳐도 고고도로 미사일을 날려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북한이 수만명의 한국인을 살상하려 한다면 미사일이 아닌 직접 포격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서울은 북한이 갖춘 방사포의 사정거리 내에 있기 때문이다. 사드는 방사포와는 무관하다. 더구나 이미 비효율적인 미사일 시스템 전략이 산재한 마당에, 사드가 고고도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체계인 한 결국 이것은 미사일 공격체계를 강화하려는 중국을 자극할 공산이 높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위협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안은 유럽에 안정을 가져온 SALT와 같은 것뿐이다. 197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냉전의 양측은 상호 맞지 않는 여러 이해관계를 세 가지로 조정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 핵무기 협의,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CSCE)에서의 정치경제적 논의, 그리고 유럽에서의 군감축 및 상호 군감축 협의가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그러한 접근방식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이번 결정이 그보다 더욱 평화에 무심한 것은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은 미사일이나 핵무기 따위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정착을 위해 미국과 공조해야 무기를 사용할 공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인항공기 기술은 가파르게 발전 중이며 이에 따라 범세계적 안전에 까닭 모를 위협이 되고 있다.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미래의 전쟁 수행 주체는 심지어 국가조차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무인항공기와 관련한 어떤 종류의 협약조차도 논의한 바 없다. 무인항공기는 동북아의 무기경쟁구도를 악화시킬 뿐이다.

무엇보다도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위협, 즉 해수면 상승, 사막지역의 확대와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잠재적 혼란에 맞닥뜨릴 것이다. 향후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갈 곳은 아마도 화석연료를 줄이고 연료 소모가 적은 생산형태를 도입한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며 그에 따르는 정치적•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비롯한 국가들은 이 장기적인 방안을 위해 공조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공통의 아젠다 확립에 힘써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워싱턴 DC의 타성에 젖은 싱크탱크에서 나온 사드 배치 같은 이슈에 순응하며 잘못된 결정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런 일에 몰두할 만한 여유가 없으며 만일 이런 무기경쟁이 가속화할 때 한국은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다. 동북아의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위협에 한국이 단호하게 나서서 해결책을 찾고자 의지를 보일 때, 그리고 이 문제에서 한국이 다른 국가들을 포용할 의지를 보일 때,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은 의외의 많은 지원세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금전적 이익 혹은 정치적 이익에만 매달려 작금의 행보를 계속할 때, 불필요한 비용은 현저하게 늘어만 갈 것이며 결과적으로 후손들에게 큰 부담만 지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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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젊은이의 상상력이 스마트폰의 성장 원동력”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11일)

아시아투데이

“동아시아 젊은이의 상상력이 스마트폰의 성장 원동력”

2016년 7월 11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현재 동아시아에서 스마트폰이 갖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고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새로운 기회를 준다. 스마트폰의 경제적 가치는 더 이상 값싸게 제조한 후 비싸게 판매해 발생하는 이익에만 국한돼서는 안된다.

이제부터는 스마트폰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돼야 한다.

첫 번째로 스마트폰의 제조와 관련 컨텐츠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는 최대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해야한다.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의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리고 한•중•일 또는 그 외의 아시아 지역의 예술가들이 스마트폰의 기본화면이나 아이콘 등 디자인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중국이나 한국 전통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이미지나 디자인을 스마트폰 레이아웃에 적용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당나라나 백제 왕조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원하는 사용자는 존재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스마트폰의 레이아웃과 핵심 디자인은 서구화돼야만 어필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오늘날에는 사실 정반대다.

또한 스마트폰의 이모티콘과 어플리케이션 생산에 대한 현재의 접근 방식은 아시아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창의적인 젊은 이들과 연결돼있지 않다. 우리는 개방형 플랫폼을 만들어 중국이나 일본,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직접 자신만의 이모티콘을 디자인하여 전세계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모금을 마련할 수 있게 해서 페이스북과 같은 현 어플리케이션을 뛰어넘는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의적인 사고의 젊은이들이야말로 그들의 네트워크 기술로 새로운 프로그램과 아이콘, 게임 등을 만들어 우리를 하나로 이어줄 것이다. 이들은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강력하고 역동적인 사이버공간을 구축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상상력이 스마트폰의 성장 원동력이 될 것이다.

스마트폰의 사회 기여 

두 번째로는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들로 하여금 국내외적으로 책임 있는 시민이 되는 참여적 사회를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스마트폰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을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우리 시대의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이슈에 대해 논하는 네트워크 구축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우리가 함께 모여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스마트폰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청년들이 비디오 게임과 별 의미 없는 주제에 대한 채팅을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면 우리 문화를 저해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오용이 단지 단기적인 이익이 된다고 해서 차세대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둬선 안된다. 스마트폰의 주된 목적은 시민들에게 의미 있는 지식을 제공하고, 윤리규범을 가르치고, 젊은이들이 미래에 더 나은 사이버 공간을 구축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창의적인 스마트폰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대규모 프로젝트에 의해 스마트폰의 사용이 정의되고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명상과 호흡 운동이 스마트폰 사용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 그래서 반복적인 패턴이 빠지거나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이 기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연구들에 의하면 스마트폰 사용시 적절한 명상이나 깊은 호흡을 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더 수동적으로 변하고 행동에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사용은 사회에서 시민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자신을 단순히 고객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당한 온라인 사회를 형성하는 데 책임과 의무가 있는 세계시민으로 인식해야 한다. 공정한 인터넷을 유지하고, 유해 컨텐츠를 차단하고, 건설적인 협력을 장려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책임감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디바이스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예술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부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이것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가상공간에서 예술, 문학을 창조하고 새로운 공동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페이스북과 같은 원시적인 소셜 네트워크를 넘어서야 하고, 새로운 형태의 협업을 장려하고 지지하는 개방형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미래에 훨씬 더 큰 무언가로 통하는 포털, 즉 통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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