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다른 백년 2017년 1월 5일)

다른 백년

“촛불을 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2017년 1월  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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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여러분,

우리( 글은 저와 구예린 아시아인스터튜트 연구원이 함께 글입니다)는 손에 촛불과 직접 만든 포스터를 들고 광화문광장에 모인 여러분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도 있었고, 고등학생, 심지어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법치와 책임정치를 요구하는 모습은 매우 숭고했습니다. 거기에는 정치의식의 맥박이 뛰고 있었습니다.

언론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칭찬했고,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됐다고 추켜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의 절친 최순실이 철창에 갇혔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이 남아 있습니다.

반동으로 끝난 시민혁명들

1960년 4월 26일에도 한국에서 어떤 대통령이 사임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학생들과 시민들의 요구에 밀려 사임했을 때, 학생들은 환호했고,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정세에 어두웠고, 앞으로 어떤 정부를 세우고, 어떤 정책을 추진할지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승만 사임 이후의 권력공백기를 틈타 누군가가 권력 찬탈을 노린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장면 정부는 분명한 비전이 없었고, 위험한 정치게임에만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박정희 라는 영리한 젊은 장군이 군대 내 불만세력을 규합해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 후 수 십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질식당했습니다.

혹은 1980년 서울의 봄을 떠올려 보십시오. 3김의 정치적 분열은 결국 전두환 장군의 야만적 통치로 귀결됐습니다.

1987년에도 3김은 분열했고, 결국 노태우 장군이 집권했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잠시만 들여다보면, 시민들의 수많은 민주화 투쟁이 정치인의 분열, 그리고 정치적 기회주의자의 득세로 실패하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한국은 그후로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 과거처럼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입니다. 박근혜를 몰아내는 것이 결코 최후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경유착 해체를 위한 첫걸음일 뿐입니다.

한국이 처한 상황

한국경제는 무역에 크게 의존하며,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합니다. 올해에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됩니다. 언론은 애써 감추고 있지만, 이미 해운업, 조선업, 그리고 철강업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곤 근근히 버티는 산업에 국민의 혈세를 뿌려 겨우 유지하는 정도입니다. 그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한국은 사드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교류를 빠르게 줄이려는 중국, 그리고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트럼프정부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부모세대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완전자유무역체제는 붕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트럼프정부는 한국에 보수정권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 주위에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는 매파가 가득합니다. 신임 국방장관 제임스 마티스는 중국을 미국의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중국에 의한 죽음(Death by China)≫이라는 논쟁적인 책을 쓴 무역보좌관 피터 나바로는 미국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중국의 불공정무역 탓으로 돌립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면 사드계획도 철회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맞서 한국을 미일 동맹으로 묶으려고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습니다.

사드는 드론, 헬리콥터 등 한국이 구매하는 미국 무기 세트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2014년 78억 달러의 미국 무기를 산 최대 고객이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한국에 대한 무기 구매 압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진정으로 자기 나라의 발전에 관심이 많지만, 사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이 그들을 망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고등학교와 대학의 커리큘럼에서 사라졌고, 많은 젊은이들이 지루함을 참아가며 경영, 경제, 회계학 수업을 듣습니다.

아무리 삼성그룹이 경영 전공자를 찾더라도, 만약 여러분이 좋은 정부와 건강한 사회를 갖고 싶다면, 정치철학, 역사,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인문학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떻게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있는 시민성을 만들며, 독재의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면, 플라톤과 공자, 베버와 맑스를 읽으십시오. 또 그들을 읽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경영학 수업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부모세대들, 그러니까 1960년, 1979년, 1987년의 시민항쟁에 참여했던 그 세대들은 지금의 젊은세대보다 철학과 윤리학,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전략에 더 밝았습니다.

혹시 이번 촛불집회 이후에 함께 모여 정치개혁과 정부의 본질 등에 대해 토론해본 적이 있나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야 하고, 어떻게 국민을 섬기는 정부를 만들지 밤늦도록 토론한 적 있나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또는 홉스의 ≪리바이던≫을 읽으면서 책에다 빼곡이 메모를 한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꼭 그렇게 하십시오. 다시 한 번 정치인에게 속지 않으려면 젊은이들이 정치와 정부, 공공정책의 원리를 제대로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언론의 감언이설을 조심하십시오.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 같은 언론도 상당히 상업화되면서 날카로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기사는 심층 분석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더 몰두합니다. 그래야 수입이 생기니까요.

그러나 호기심만 자극할 뿐 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중매체와 전자 콘텐츠, 그리고 SNS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감시할 기회를 줬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매체는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부패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이들 매체는 24시간 내내 최순실 사태를 보도함으로써 정작 한국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외교적 도전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합니다.

보수매체든, 진보매체든 의회를 통과한 법안, 정부지원금을 받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언론이 정책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니, 우리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이들이 갈취한 금액은 이명박정부에서 4대강사업에 쏟아부은 21조 원 또는 자원외교에 낭비된 수 십조원에 비하면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멀쩡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명박의 경우 정부 관련 기관을 중간에 끼고 정책결정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의 비리가 감춰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새누리를 보수정당, 민주당과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착각합니다만, 정치인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기후변화, 또 다른 위협

혹시 촛불집회를 할 때, 바깥 공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눈치챘나요?

박근혜정부는 대기 관련 규제를 없애고, 공장 감독관을 축소했습니다. 그 공장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암과 수많은 질병을 야기할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곳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헌법 10조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스모그가 매일 중국에서 건너온 오염물질과 결합됩니다. 지금은 중국의 오염이 한국보다 심하지만,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OECD국가 중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이 가장 낮고,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에서 이 문제는 20번째 의제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의제는 박근혜 탄핵이었습니다. 마음 속에 갖고 있는 의제가 20개는 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12월 얼마나 이례적으로 따뜻했는지 아십니까? 물론 여러분의 어머니가 아침 출근 때마다 매우 추우니 꼭 껴입으라고 말해주곤 했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짜 진실은 서울이 지난해 12월처럼 따뜻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수많은 과학자들이 화석연료, 환경파괴로 인한 생태지옥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복구하려면 천 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기후변화는 한국을 사막으로 만들 것입니다. 벌써 중국 베이징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북한의 땅도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해수면 상승은 부산과 인천을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정치인이 이런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분까지 이에 대해 눈감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의제가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기술문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초경쟁문화에 따른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차고 넘칩니다.

손 잡고, 행동하라!

여러분들에겐 한국과 세계를 바꿀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문제들은 단순히 촛불집회를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 십 년의 싸움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일단 호흡을 고르십시오.

우선 고등학교 시절부터 체화된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십시오. 동료와 힘을 모아 서로 돕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유연하게 생각하십시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부모의 시선, 대중매체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산업화와 소비주의의 낡은 이데올로기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기존의 시스템은 실패했습니다. 스스로 학습해야 합니다. 설사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정치인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들을 판단하십시오. 특정 경제시스템을 절대선 또는 절대악이라고, 또는 어떤 나라를 영원한 적 또는 동지라고 제단하지 마십시오.

규칙을 지키고,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부모의 말을 거부하십시오. 그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설사 당신이 아직 선거권이 없더라도 당신의 행동으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나라를 바꿀 사람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는데, 대통령이나 재벌회장님이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젊은이에게 투자하는 것이 한국을 발전시키는 길임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십시오.

권위 또는 권위있는 인물에 기대지 마십시오. 그런 권위가 없더라도 당신이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당신을 돕는데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돕는 것이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즉시 발벗고 나설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사람들은 리더가 아니라, 기적을 일으킬 메시아를 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투표장에서 우리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초인을 뽑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초인은 절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밤낮으로 여러분이 뽑은 정치인들을 관찰하고 감시해 보십시오. 그러면 작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당신을 이끌 리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거울을 보십시오. 거기에 당신이 찾던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열정적인 풀뿌리운동이 정치인을 움직이고, 세상을 진보시킵니다. “차분하게, 조직하라(don’t get mad; organize!)” 이 말처럼 한국 젊은이에게 필요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촛불집회는 과거와는 달랐습니다. 여전히 변화를 위한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하십시오. 여러분의 부모세대들은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안주하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 됐다고 착각합니다. .

여러분은 리무진 뒷자석에 몸을 기댄 정치인이나 재벌회장님과 달라야 합니다. 변화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용기를 가지십시오. 상상하고, 확신하십시오.

더 나은 한국을 만들 수 있다는 상상과 확신을 멈추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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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식품 대신 향토 음식을 먹자” (중앙일보 2016년 12월 23일)

중앙일보

“가공식품 대신 향토 음식을 먹자”

2016년 12월 23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난달 어느 도지사가 주최한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전문가들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도(道)의 노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그 전문가 그룹은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장시간 바이오•나노 기술에 대해 의견을 나눈 후에 스타트업 기업 활성화를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림의 떡’ 같은 미래를 현실화하려는 논의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우리에게 제공된 간식거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모든 참석자 앞에 놓인 것은 화려한 색상으로 포장된 초콜릿•쿠키•캔디가 한 무더기 쌓여 있는 플라스틱 그릇이었다. 하지만 내 식욕을 자극하는 간식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토론 행사 전체가 그 도를 홍보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먹을거리 중에서 현지에서 생산된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

모임 참가자들에게 의견을 구한다면, 아마 그들은 모두 그 지역에서 생산한 과일이나 곡식으로 만든 간식거리를 훨씬 선호했을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고장에는 고유의 전통과 음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독특한 풍미가 담긴 먹을거리 말이다. 나는 한국이 전통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말린 과일, 케이크, 견과를 자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들을 내놓았다면, 완벽한 간식일 뿐만 아니라 이를 생산하는 현지 농업인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8여 년 전부터 지방정부와 일하고 있다. 그 경험을 통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향토 음식이 토론회 같은 행사의 식탁에 오르는 일이 드물다는 점이다. 관례적인 행사 실행 계획의 벽을 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도지사 집무실에서 접하게 되는 음식은 현지가 아니라 대형 음식 제조업자가 생산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파느냐’다. 내가 편의점에 들어갈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것은 초콜릿바, 감자칩, 크래커, 나트륨과 포화지방이 많이 포함된 컵라면 등이 놓인 가공식품 진열대다. 진열대 위에 있는 제품들은 그 어떤 것을 집어도 영양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채소나 과일은 찾기 힘들다. 이런 판매 추세는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소년과 청년은 가공식품에 노출돼 있다. 그들은 심지어 가공식품을 소비하도록 부추김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가공식품이 그들의 건강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음식이라고도 할 수 없다. 각 지방 농업인들이 생산하는 영양가 높은 먹을거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많은 의학 전문가가 가공식품을 섭취하지 말라고 권장한다. 설탕이 많이 포함된 음식과 당뇨병 같은 질병, 심지어는 알츠하이머병 사이의 연관성이 점차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고당분 음식 섭취가 낳은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하 사람들 중에서 당뇨병 치료를 받는 비율이 지난 10년 동안 31% 증가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비만 인구는 전체 인구의 4.2%였다. 2002년 2.5%에서 급상승했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을 때 편의점에 신선한 과일과 야채가 한국보다 훨씬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또한 현지 농장에서 생산된 것들이 많이 포함됐다. 한국인들은 더 잘할 수 있다. 한국의 오랜 고영양(高營養) 식품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 시민들에게 진정으로 몸에 좋은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지 유기농 제품을 편의점에서 팔도록 의무화한다면 건강한 식생활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식품이어야 하는가. 우선 영양가 부족에도 불구하고 구매를 부추기는 식품이 아니어야 한다. 몸에 좋은 식품이 생산되도록 만들고 시민에게 좋은 음식 섭취 습관을 가르치는 것은 고층빌딩을 또 건설하는 것이나 최신형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자녀들의 건강을 희생시키며 충동적인 식습관 유도로 단기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음식을 천천히 먹고, 식품을 생산하는 농업인들과 대지(大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권장해야 한다. 또한 인간 세상과 자연 사이의 항구적인 조화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일부 예민한 사람들이 기분 상할지 모르지만, 나는 정부가 건강한 음식을 시민에게 제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 앞에 진열된 가공식품의 양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고 판매 식품의 표준을 마련하는 것은 전적으로 적절하다. 먹을거리와 관련된 것이야말로 정부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밥이 보약’ ‘식약동원(食藥同源)’ 등 음식이 한국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을 나는 항상 듣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 음식이라는 보물이 사라지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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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판을 한번 뒤집자” (중앙일보 2016년 12월 3일)

중앙일보

“한국 언론의 판을 한번 뒤집자”

2016년 12월 3일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한국 언론이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참혹한 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로 기억될 것이다. 언론의 위풍당당한 전당(殿堂)을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미국 언론도 잘못 짚었다고 내게 말하지 말라. 미국의 엉성한 저널리즘은 미국의 문제다. 미국 주요 신문들은 계속 클린턴의 승리를 전망하는 기사를 썼다. 심지어는 그의 승리 시나리오가 보다 신빙성 있게 보이도록 클린턴에 투표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아니라 “클린턴이 승리할 확률은 92%”라는 식의 전문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이런 사정에 밝은 많은 미국인은 선거 기간 중에 노출된 미국 주요 매체들의 편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프로답지 않게 기자들은 기사 작성 전에 클린턴 캠프와 모종의 조율을 했으며 언론사들은 클린턴 캠프에 기부를 했다. 수개월 동안 클린턴에게 불리한 뉴스가 쏟아지자 많은 유권자가 그에 대한 신뢰를 접었다. 그러나 한국 매체는 주류 미국 매체의 잘못된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답습했다. 따라서 독자들은 미 대선이 결판난 줄 알았다.

한국 교육 수준은 세계 최상급이다. 수많은 한국 기자들은 영어 구사력이 지극히 뛰어나다. 하지만 한국 매체의 관행 때문에 이번 대선이 박빙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본 여러 저널•블로그•기사 등 깊이 있는 문헌을 살펴본 기자는 거의 없었다.

한국 특파원들이 미국 근로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면, 소수집단 사람들이 클린턴에게 냉담했으며 많은 백인이 트럼프에게 열광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파원들이 젠체하는 워싱턴의 싱크탱크 행사에서 미국의 보통사람을 만날 일은 없다.

한국 기자들은 한국의 스마트폰이나 컨테이너 선박 제조업 종사자들과는 달리 세계 최고가 목표가 아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한국 신문들은 외국 뉴스 기관들이 제공하는 뉴스들을 신속하게 소화하고 요약하는 데 주력한다. 한국 고유의 시각으로 국내외 독자들에게 기사를 제공하는 것은 한국 신문사들의 목표가 아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은 세계 저널리즘을 주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산을 명백히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사람이 영어•중국어•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말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있다. 한국은 매체 보도를 종종 뒤틀리게 만드는 제국주의 과거가 없기 때문에, 외국 콘텐트를 복제하는 게 아니라 한국 자신의 문화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저널리즘 전통을 수립하는 데 아주 유리하다.

새로운 한국 저널리즘을 만드는 과정은 부분적으로 모든 격식과 예의의 포기를 요구한다. 특파원들은 외국의 힘 있는 사람과 원만한 친분이나 우호관계를 쌓기 위해 파견된 게 아니다. 특파원은 현상의 본질을 파고들기 위해 미국 정치인•관료•변호사들을 거칠고 집요한 질문으로 다뤄야 한다. 기자들은 또한 사람들을 오도하기 위해 교활하게 작성된 권위 있는 어조의 기사들에 매혹되지 말아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다양한 출처의 글들을 읽은 후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해야 한다.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설명하는 5개 혹은 6개의 시나리오를 우선 상상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셜록 홈스가 한 것처럼 신중하게 사실(fact)을 검토해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들을 천천히 하나하나 제거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진실에 근접하게 해준다. 자신의 상상력으로 가설을 세우지 않으면 이해관계자가 제시하는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구속하는 함정에 쉽게 빠지게 된다.

신문은 진리 추구를 이상으로 삼아야 한다. 일반 독자들이 ‘정보에 기반한 결정(informed decision)’을 내리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도에서다. 민주주의적 체제 내에서 정보기반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교양 있는 대중을 형성하려면 매체의 역할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기자들은 복합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성을 독자들에게 창의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깊은 의무감을 느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미디어업계는 질 낮은 레드오션 시장이 돼 버렸다. 하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그런 안개 같은 상황을 빨리 탈피할수록 한국은 더 빨리 자신의 국가이익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글로벌 리더로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독자들이 어떤 사안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 주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사들을 꺼릴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시간이 흐르면 그러한 글쓰기가 대중을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적인 시민으로 변모시켜 그들을 책임성 있는 정치로 다시 인도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은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힘을 합치고 정보에 기반한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 한국은 매우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에 대한 깊은 헌신이 필요한 때다. 언론의 모범은 해외에서 찾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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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위협, 이대론 한국의 미래 보장 못 한다” (오마이뉴스 2016년 12월 1일)

오마이뉴스

“기후변화 위협, 이대론 한국의 미래 보장 못 한다”

2016년 12월 1일

임마누엘 페트라이쉬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국가 주도 미래 계획 짜야

최근 부산과 제주에 들이친 태풍 차바는 막대한 피해를 주면서 이런 종류의 재해에 대비하지 못한 한국의 허술한 실태를 그대로 보여줬다. 과학자들은 향후 30년간 바다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점차 이런 대규모 기상이변이 빈번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해수면 상승에 의한 범람 사태에 한국은 어떤 대비책을 마련해두었는가? 없다. 사태는 언제가 되었건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연안은 해수 범람으로 살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며 농업 역시 막대한 타격을 입어 농산물 생산량도 줄어들 것이다.

진정 큰 문제는 후자에 있다. 국내 농산물 감소는 외국 농산물을 싼 값에 수입하면 될 일이고, 버려진 농지는 주거용으로 쓰면 된다는 식으로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미국과 러시아 등 농산물 생산국에서 나타나는 농지 사막화 현상과 중국이나 인도에서 늘어나는 식량수요에 맞물려 한국의 농산물 수입은 점점 더 어려움을 맞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기후변화에 대비해 국내 농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대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이제는 단지 재해가 일어난 뒤의 구호체계를 만드는 데서 나아가 주거, 농업을 포함한 모든 인간 활동의 면면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이변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장기적 대응책이 필요하다.

30년 후 한국의 미래를 그려 보는 비전의 일환으로, 최상의 인재들이 모여 기술 개발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정치(精緻)하게 구상했던 시절이 있었다. 1962년부터 1981년까지 이어진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5년 단위로 설정된 계획을 통하여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며 기술을 획득하는 동시에 당시 한국이 직면한 도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는 사업이었다.

그 후 계획은 인프라와 기술력 확보를 지향하는 초점이 사라진 상태로 1996년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2026년까지 이어질 제3차 생명공학 육성법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장기적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현재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추세는 진정 한국이 직면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겨냥한 상품 개발에 지나치게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한 5개년 계획을 다시 짤 때가 되었다. 새로운 5개년 계획의 최우선 과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에너지 소비를 경감하는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계획의 수립을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미래 예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10년, 20년, 30년 후 한국이 처하게 될 자연환경은 어떤 상태가 될 것인가? 해수면은 어느 정도 상승할 것이며, 가뭄, 태풍, 돌발홍수는 어떤 빈도로 발생할 것인가? 토양이나 임산, 농산, 수산 자원은 어떤 상태가 될 것인가?

둘째, 현재의 기술 발전을 감안하여 미래 각 시점에 어떤 가용기술을 동원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 기술을 가능한 한 빨리 적용하여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으로 예상되는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응할 것인가?

셋째, 미래의 기후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기반의 새로운 인프라를 설계하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수출보다 기후변화 대책이 더 시급

그런 예측에 기반한 계획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것이다.

첫번째 5개년 계획은 우선 2021년까지 모든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적절한 단열 처리를 의무화하면서 시작되어야 한다. 창문에는 태양광 필름을 부착하게 하고, 보온을 위해서는 신속히 최상의 단열재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산업계, 학계 및 정부가 함께 진행할 그 계획은 기술 문제나 상업화 문제뿐 아니라 지역민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시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초대형 태풍,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여 산림, 해양, 농지를 보호하기 위한 계획들 역시 개별적으로 수립, 시행되어야 한다.

경제개발 계획의 목표가 수출용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 주 목표가 되어야 한다. 해수면 상승과 온난화의 위협에 대한 대비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상업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기획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 기획을 위한 재원은 가능한 한 국내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재원은 국가적 이익과 무관한 투기나 단기적 투자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차원의 대응에 필요한 구체적인 수요를 위해 투입되어야 한다.

기후변화라는 압도적인 위협에 직면해서도 조선업, 자동차 산업, 철강 산업, 석유화학공업 등의 산업이 한국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

기후 변화라는 엄청난 위협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유용한 기술을 사회구조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전시 경제에 준하는 기획과 실천을 통해 용기와 지도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외는 인정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부는 화석연료의 수입 의존도를 과감하게 줄여 나가야 한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효율을 높이고 광범위한 기술을 수용하며 시민들의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일련의 5개년 산업 발전 계획을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술적인, 관습상의, 정책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특유의 문화와 관습에 기반 하여 만들어진 독특한 혁신방식은 그 자체로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상품’이 될 수도 있겠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5개년 계획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계획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병행되어야 한다.

계획은 한국인의 문화, 관습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를 모색하고 석유 수입으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하는 금융, 무역, 투자 정책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범적인 글로벌 모델국가 한국의 등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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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시절, 퇴계의 진리를 되새기다” 중앙일보

일본에서 이퇴계 관련 학회에서 기조열설을 했어요.

중앙일보 보도는

 

“기조 발표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경희대 교수는 “우리 삶의 도덕적 의미를 제어하는 방도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건강한 정치문화를 창출해 낼 수 있다”고 제안해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지속 불가능하고, 소비와 충동적인 욕망에 내몰린 단말마적 시각에 머물러 있어서 공동의 미래를 열어갈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 신유학(新儒學)의 전통, 특히 퇴계가 주창한 경(敬)의 회복으로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중앙일보

“어수선한 시절, 퇴계의 진리를 되새기다”

2016년 11월 30일

정재숙

 

 이 어지럽고 황망한 때에 우리 마음을 그윽하게 이끌어줄 한 말씀은 없는가. 지난 26~27일 일본 후쿠오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6차 퇴계학(退溪學) 국제학술회의는 정치 격변의 시절에 ‘왜 다시 퇴계인가’를 묻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광호 국제퇴계학회 회장은 “현대 인류가 처한 위기 상황을 생각하면 이 시대가 요청은 하면서도 찾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 그 마음의 근원에 관해 500여 년 전 퇴계가 밝힌 진리는 지금 더 절실하다”고 개회의 뜻을 전했다. 주최 측인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캐나다에서 모인 학자와 회원 150여 명은 퇴계 이황(1501~70)이 걸어간 인간의 근원적 혁명의 길을 어떻게 21세기형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까, 28편 논문 발표와 토론으로 따졌다.

일본서 퇴계학 국제학술회의 한•중•일•캐나다서 모인 150여 명선생이 닦은 ‘경(敬) 사상’ 열띤 토론 기조 발표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경희대 교수는 “우리 삶의 도덕적 의미를 제어하는 방도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건강한 정치문화를 창출해 낼 수 있다”고 제안해 주목받았다. 이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지속 불가능하고, 소비와 충동적인 욕망에 내몰린 단말마적 시각에 머물러 있어서 공동의 미래를 열어갈 비전을 제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 신유학(新儒學)의 전통, 특히 퇴계가 주창한 경(敬)의 회복으로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주자(朱子)와 퇴계와 다산(茶山) 정약용의 철학을 비교한 돈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콜럼비아대학 교수는 “세 학자 모두는 진정으로 인간답다는 것은 우리 동료인 타인들과 타당하게 상호작용하고 타인의 이익을 나의 이익에 우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갈파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 배양의 방법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베이커 교수는 “우리가 세 분이 제공하는 마음공부의 조언에 귀 기울인다면 이 세상은 보다 나은 곳이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밖에 곽정례 경희대•김언종 고려대 교수의 ‘조선 유학의 일본 전파 경로에 관한 재론’, 양일모 서울대 교수의 ‘계몽기 한국 잡지의 퇴계 담론과 일본의 지식인’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퇴계학 국제학술회의 개최 40주년을 기념해 ‘이퇴계 선생 현창비(顯彰碑)’, 위패를 모신 서원 ‘경신당(敬信堂)’이 서있는 쇼교지(正行寺)를 답사했다. 다케하라 치묘(竹原智明) 주지는 “‘경(敬)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는 퇴계 선생의 정신을 받들며 살아가고 있다”고 인사했다. ‘이퇴계 선생에게 배우는 모임’이 활성화된 일본인의 퇴계 선생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중국의 꿈’은 미국인가 (허핑턴포스트 2016년 11월 30일)

허핑턴포스트

‘중국의 꿈’은 미국인가

2016년 11월 30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얼마 전에 어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남경에 다녀왔다. 거기서 안내를 해주는 학생에게 그 유명한’부자묘(夫子廟)’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도심이 아닌 외곽의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찻집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경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명나라 때까지 ‘금릉(金陵)’이라 불렸던 ‘남경’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연구를 해왔다. 도쿄대학(東京大学)과 하버드대학에서 중국문학을 공부했을 때 남경을 무대로 지어진 시를 많이 읽었다. 17세기의 산문 잡기에 등장하는 진회하(秦淮河)의 아름다운 풍경과 대학시절 소설 『홍루몽(紅楼夢)』을 읽을 때 상상했던 18세기 남경의 죽 늘어선 저택들의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스치고 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거리를 걸으며 옛 금릉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부자묘 주변의 옛 건물은 이미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양복점 등이 들어선 볼품없는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질 좋은 고급 차를 파는 곳도 몇 집 있었지만 길가 상점에서 팔고 있는 음식과 기념품들은 방콕이나 L.A에서 파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쉽게도 남경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것들은 끝내 찾지 못했다. 시인, 소설가는커녕 장인과 기술자들의 모습까지 이젠 사리지고 없었다.

부자묘의 내부도 옛 정취가 사라졌다. 벽은 석벽과 토벽 대신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었고, 목수의 실력이 나빴는지 벽과 바닥을 잇는 접합부의 마감은 허술했다. 진열된 가구들도 싸구려 느낌이 들었고 벽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상한 그림들이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나는 남경에서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과 일본의 나라(奈良) 동대사(東大寺)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사의 흔적과 끝내 조우하지 못했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가 남경의 과거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거리를 다녀 보니 그 화려했던 남경의 역사와 문화는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고, 지금의 남경은 과거와 단절된 낮선 도시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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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제 협력 전문가는 문학을 전공해야 한다” (아시아문화와경제 2016년 9월 12일)

아시아문화와경제

“모든 국제 협력 전문가는 문학을 전공해야 한다”

2016년  9월 12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국제 협력 연구에서, 어떤 사람이 외교나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그 역할이 정부 자체에 있든, NGO, 정부, 기업 사이의 국제적 교환과 관련된 광범위한 지식 분야에 있든, 경제학, 개발 정책 또는 국제 협력 연구에 풍부한 경험을 가져야 한다는 가정이 일반적이다.

학부 시절 단 한 과목의 경제학 강좌도 수강하지 않았고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가 되어서야 정말로 진지하게 국제 협력을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내가 왜 뒤늦게 국제 협력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국제 협력 및 외교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해명할 필요성을 느낀다. 실제로 선천적으로 다소 성격이 급한 나는 위의 일반적인 가정에 대하여 반론하고자 한다. 나는 오히려 국제 협력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특히 오늘날,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력에서 몇몇 인문 강좌를 수강해야 할 뿐 아니라 문학 (아니면 예술이나 철학) 분야를 전공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물론 문학 전공이 외교로 향하는 최선의 첫 단계라는 사실이 진실일 수 있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확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단편적인 충고는 약간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한국과 중국에서나, 또는 이태리나 프랑스에서나, 인문학 전공이 공무원의 해외 근무에 필수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심지어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의 경우 라틴과 그리스 전통에 대한 깊은 지식,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중국 고전적 전통에 대한 깊은 지식이 공통점 – 스타벅스나 Economist지에 대한 애착에서 찾기를 바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공통점 – 발견에 필수적이었다. 문학과 철학, 공통의 용어들, 그리고 철학적 과학적 원리에 기반한 그런 공통의 문화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규범의 확립을 도왔다.

이름 바로잡기

국제 협력에서 언어를 다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결국 언어의 취급은 문학과 작문 공부에서 배우는 것이다. 이것을 국제 협력에 관한 유명한 전문가, 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험프티 덤프티에게서 인용해 보자.

“너를 위한 영광이지!”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영광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앨리스가 말했다.

험프티 덤프티는 거만하게 미소 지었다. “당연히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모르지. 내 말은 ‘너를 위한 근사하고 압도적인 논쟁’이라는 뜻이야!”

“하지만 ‘영광’이 ‘근사하고 압도적인 논쟁’을 의미하지는 않잖아”, 앨리스가 반박했다.
험프티 덤프티는 약간 경멸조로 말했다. “내가 단어를 사용할 때는,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것을 선택했음을 말하는 거야 – 딱 그 뜻이야.”

앨리스가 말했다. “여기서 문제는, 네가 단어를 여러가지 다른 것을 의미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이겠지.”

험프티 덤프티가 말했다, “그 문제는, 어느 의미가 주가 되느냐겠지. 그게 다야”

험프티 덤프티가 여기서 말하고 있고 루이스 캐롤이 우리의 주의를 끌어들이는 본질적 요지는,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는 행동이 정치와 권력의 가장 중요한 행동이며, 그것이 종종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작용하지만(이념적 변화는 본질상 육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의 변화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험프티 덤프티는, 단어의 의미를 통제하는 것이 권력의 본질임을 시사한다. 비유해 보자면, 용어의 재정의로 초래된 변화는 핵반응 수준인 반면 일상적 외교에서 초래되는 변화는 화학적 반응 수준으로 발생하며, 보다 가시적이지만 심오함은 덜하다.

“국제연합”, “테러와의 전쟁”, “국제 사회”, “정직한 브로커” 등과 같은 용어에 대한 의미를 정하는 능력은 국제 관계에서 궁극적인 권력이며, 아이러니, 또는 위선과 부정확의 영향에 의해 이러한 용어들이 침해 받거나 약화되는 정도만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용하는 용어로서의 기능이 중지된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문학의 문제인 것이다.

공자 또한 어떤 형태든 권력이나 담론에 대한 용어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했고, 관직에 대한 전제 조건인 기술 훈련을 배제할 정도로, 글쓰기는, “wen”(문 文)의 연구가 공자 연구 프로젝트에 매우 중심적이었던 주요 이유가 될 것이다. 공자가 이용한 용어는 “이름 바로잡기”(정명 正名)였으며, 그는 사람, 제도 및 관습을 기술하기 위해 이용되는 용어를 정확히 하는 것(정명 正名)이, 가난한 사람을 먹이는 박애나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특정 행위보다, 평화를 유지하고 세상을 공정하게 만드는 데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공자는 “이름 바로잡기”로 무엇을 의미하고자 했으며 그러한 사상과 현대의 관련성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으로, 나는 우리가 오늘날 직면하는 심각한 문제의 대부분이, 우리가 일상의 말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원래 의미와 그들이 실세계에서 묘사하기 위해 이용되는 물체의 실제 성질 사이에 심각하게 커져가는 갭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나는 이 갭이 우리가 부딪치는 가장 도덕적인 문제를 규정하며 공자의 접근이 상당히 실제적으로 우리가 실행 가능한 해결책에 도달하도록 돕는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 우리의 일상 생활에 중심적인 몇 가지 용어의 예가 있지만 그 의미는 지난 20년에 걸쳐 상당히 변했다:
“은행”, “기업”, “정부”, “프라이버시”, “재산”, “군대”,“지능”
이러한 용어들의 의미 변화는 우리 불행의 원천이다. 그 의미들이 변하지 않았다면 사태가 이전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느낌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기능하지 않는 제도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많은 좌절과, 윤리의 결핍 인지나 현대 세계의 잔인성에 대해 느끼는 혐오감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제도와 실제 제도 사이의 갭과 관련되어 있다.

“무엇이 박근혜를 추락시켰는가” (중앙일보 2016년 11월 12일)

중앙일보

2016년 11월 12일

“무엇이 박근혜를 추락시켰는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우리가 그저 ‘내가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데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추락시킨 스캔들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응시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한국 정치문화의 어떤 요소가 극소수 사람들이 국가 정책을 변덕스럽게 좌지우지하도록 허용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만약 영향력 있는 식자(識者)들이 근래 역사상 최악의 정부 운영을 목격하고도 그토록 수동적이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토록 통제 불능이 되지는 않았다고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나는 최순실이라는 이름을 몰랐지만 많은 관계•재계 사람들이 청와대의 비밀스럽고 무책임한 정책 결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 왔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전문가의 정기적인 조언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었다. 거의 예외 없이 한국의 최고 엘리트들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을 요구할 필요성이나,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동료 시민들이 수년간 지속된 정치 위기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특별히 느끼지 못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여러 차례 대화할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들었고 이런저런 자리에 누가 임명될 것인지에 대한 추측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도 “무엇이 한국 사람들에게 최선인가”를 묻는 것을 듣지 못했다. 문제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정책이 아니라 정치문화다.

진실을 직시하자. 오늘날 대한민국에 최대의 위협은 북한도 경기침체도 특정 정치인의 행태도 아니다. 가장 큰 위협은 문화적 데카당스(decadence•퇴락)의 확산이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개개인은 민족의 미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들은 별생각 없이 음식, 술, 성적 쾌락, 휴가와 스포츠에 탐닉한다. 단기적 만족이 인생 목표가 됐으며 희생의 가치는 사라졌다. 이런 게 전형적인 퇴락이다.

시장 수요를 창출하려는 잘못된 노력 때문에 우리가 인간 본성의 원시적인 힘들을 풀어놓았다는 게 비극이다. 그 힘들은 전통 한국 사회에서 요구됐던 합리성, 자제력, 마음 챙김(mindfulness)을 대신해 우리 젊은이들에게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단 몇 분만 텔레비전을 봐도 오늘날 한국을 위협하는 기괴한 문화적 퇴락을 목격할 수 있다. 생각 없이 무절제하게 꾸역꾸역 음식을 먹어 가며 오감을 만족시키는 장면이 끝없이 반복된다. 20여 년 전에는 ‘포르노그래피’라는 이유로 금지되었을 차림새의 여성이 광고에 나온다.

얼마간 상품을 팔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전략은 모든 수준에서 가버넌스 기반을 약화시키는 도덕적 퇴락을 초래한다. 이제 국가의 복지, 안보나 가치와 무관하게 되어 버린 정책은 부와 권력을 쌓는 기회로 전락했다. 사회 전체를 이러한 퇴락이 차지했다면 우리는 경제 정책이나 기술 정책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염치’가 사라진 것도 이러한 한국 문화 쇠퇴의 한 원인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나이 든 부모를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 그야말로 창피하고 그릇된 것으로 간주됐다. “군자는 홀로 있을 때마저도 조심해야 한다(君子?其?也)”는 말이 표현하듯 도덕적 의무가 내면화돼 있었다. 윤리는 남의 이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지난 세기에 한국인들은 점차 이러한 윤리의 강조를 제한적•억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즉시 만족’으로 표상되는 현대 생활과는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게 됐다.

염치의 상실로 사람들은 자녀들을 보살피고 일터에서 책무를 다하기만 하면 자신이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됐다. 즉 주위 사람들 행동의 윤리적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사라졌다.

또 다른 요인이 있다. 디지털 표현의 시대, 주변의 이미지가 끊임 없이 바뀌는 시대에는 인과관계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진다. 우리는 우리가 매일 하는 일과 우리 주변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 사이의 관계를 더 이상 명료하게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는 대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있을 때에도 일회용 컵을 쓴다. 종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환경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카페 종업원들을 건방지고 무례하게 대한다.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나라 문화를 깎아내린다는 개념이 없다.

우리는 한국 유교 문화에서 최상의 좋은 것들을 복원해야 하며,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 도덕과 연관됐다고 인식해야 한다. 독서•식사•담소를 포함해 우리의 모든 행위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삶의 도덕적 의미를 다시 통제할 수 있어야만 우리는 건강한 정치문화 만들기에 착수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 본성을 바꿀 수는 없지만, 모든 삶의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행동이 기대되는 문화를 재확립함으로써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을 수 있다.

광화문에서 기후변화 시위 2016년 10월 31일

광화문에서 기후변화 시위

2016년 10월 31일

수많은 사람들은 박근헤 대통령 퇴진 시위를 하는동안 옛날 부터 계획 했덤 기후변화 시위를 했어요. 친구 두명 만 왔어요. 많은 사람 한테 자료를 드리고 기후변화 의 위기를 설명 하려고 노력 했어요. 자료를 거부 하는 사람들은 생각 보다 많았어요. 그래도 매우 좋은 경험였어요.

다음주 다시 하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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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부활시키자” (중앙일보 2016년 10월 22일)

 

중앙일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부활시키자”

2016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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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꼼꼼하게 기술개발 계획을 짜던 때가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에 앞으로 무엇이 필요할지를 판단해 30년 앞을 내다보는 비전을 제시했다. 1962년에 시작돼 81년까지 지속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목표 설정을 바탕으로 전문성 확보, 인프라 건설, 기술 획득을 위한 재원을 동원했다. 경제개발 계획은 또한 국민에게 한국이 직면한 도전이 무엇인지 폭넓게 이해시켰다.

5개년 계획은 인프라와 기술에 대한 포커스가 사라진 채로 96년까지 계속되다 결국 중단됐다. 하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장기적인 지원은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2026년에 끝나는 제3차 생명공학 육성 기본계획이 좋은 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개발(R&D)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상품을 개발하는 데 지나치게 주력한 반면, 한국이 직면한 위협을 정면으로 대응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5개년 계획을 다시 수립할 때가 왔다. 새로운 5개년 계획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과 에너지 소비의 경감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발전 계획은 미래 예측과 다음 세 가지 측면의 미래 계획 수립으로 구성돼야 한다.

   첫째, 10년•20년•30년 후 한국이 처한 환경은 어떤 상태일 것인가. 해수면은 어느 정도까지 상승할 것인가. 가뭄, 수퍼 태풍, 돌발 홍수는 어느 정도의 빈도로 발생할 것인가. 토양•삼림•농지•수산자원은 어떤 상태일까.

둘째,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미래의 각 시점에서 어떤 기술이 가용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용 가능한 기술을 신속하게 투입해 한국이 카본프리(carbon-free)를 달성하고 여러 위협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미래의 기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기반의 새로운 인프라를 설계하고 건설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인가.

첫 번째 5개년 계획은 2021년까지 모든 빌딩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적절한 단열 처리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산업계•학계•정부가 참가하는 5개년 계획에는 기술, 상업화, 시민 교육과 도시계획이 포괄돼야 하며 각 지역의 그룹에 대한 권력부여(empowerment)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창문에 부착하는 태양광 필름과 최첨단 단열재를 신속하게 채택해야 한다. 수퍼 태풍, 해수면 상승, 삼림•해양•농지 보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다른 계획도 실시돼야 한다.

이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는 수출용 상품을 생산하는 것에 국한하면 안 된다. 기후변화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주요 목표가 돼야 한다. 해수면 상승과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는 국가안보 어젠다 차원에서 실행돼야 하며 시장성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 프로젝트를 위한 재원은 한국에서 창출되는 부분이 점진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또한 재원을 점차적으로 투입할 대상은 국가이익과 무관한 투기나 단기 투자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구체적인 수요여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후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원점에서 출발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감안했을 때 우리는 조선업•자동차제조업•철강업•석유화학공업 같은 산업들이 과연 한국의 미래를 이끌 수 있을지 묻게 될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기후변화라는 이 엄청난 위협에 대응하려면 정부는 신흥 기술을 인프라 수요와 통합하기 위해 전시경제를 방불케 하는 경제체제를 계획해야 한다. 정부는 용기와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성역(聖域)은 없을 것이다.

정부는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축소하고 단열 처리, 효율성, 의식 고취, 광범위한 신기술 수용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일련의 5개년 산업 발전 계획을 시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지극히 빠른 속도로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기술•습관•정책•문화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한국이 다른 산업국가들보다 이러한 목표들을 보다 빨리 달성하게 만드는 한국만의 혁신 방식 자체가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상품’이 될 것이다.

두 가지 5개년 계획을 병행해 실시해야 한다.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 to climate change)’을 위한 계획과 ‘기후변화 완화(mitigation of climate change)’를 위한 계획이다. 두 계획 모두 동등하게 중요하며, 두 계획이 긴밀하게 연계돼야 성공할 수 있다.

계획은 한국인의 문화•습관•가정(假定•assumption)의 변화와 한국을 오일머니와 석유 수입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한국을 글로벌 모델로 만들 금융•무역•투자 정책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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