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을 가진 한국인 최조의 미국 대통령 후보 이만열: 새로운 리더십으로 아름다운 미국을 꿈꾸는 선비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옛역사 알리고)

“푸른 눈을 가진 한국인 최조의 미국 대통령 후보 이만열: 새로운 리더십으로 아름다운 미국을 꿈꾸는 선비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옛역사 알리고출판사 2020년

1장. 우리는악惡)을두려워하지않을것입니다・08
2장. 미국 대통령 무소속 후보 강령 18조・16
3장. 민주주의의경제・32
4장. 운동주의 불평주의 마법사주의・45
5장. 미국대통령선거에무소속으로출마하는이유・57
6장. 안보란무엇인가・62
7장. 조지플로이드의사망이후생각해보는합기도의정치학・74
8장. 미국의보편적 기본소득: 경제적 해방인가, 노예제도로 가는 첫걸음인가・91
9장. 지구의 통치:현재의 정치적 혼란을 해결하려면 유엔의 대변혁이 필요하다・101

프른 눈을 가진 한국인 최조의 미국 대통령 후보 이만열

이만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옛역사 알리고 출판사 2020년 9월)

“왜 한국은 코로나 공포속에 희생양으로 선정됐나?”

왜 한국은 코로나 공포속에 희생양으로 선정됐나?”

(브레이크뉴스 2020년 7월 31일 )

이만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저는 한국 고전문학과 사상을 교수로서 미국과 한국에서 홍익인간 선비정신, 전통가치관 연구에 집중 해왔습니다. 대학교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기업, 중앙정부, 기타 NGO하고 많은 협력을 해왔습니다.. 매경, 한국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8년동안 필진으로 일하며. 한국책 중에 <한국인만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은 베스트셀러로 국방부 안보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한국인만 모르는 더 큰 대한민국>은 세종도서로 선정이 되어 국정원 인기도서로 선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https://vimeo.com/570798373

경찰대학, 경찰교육원, 많은 지방 공무원, 고등학생,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외국인이 본 한국 문화 가치를 강연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서 발견 할 수 없는 대단한 문화의 깊이에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무런 정치 색깔도 없는 사람인데 최근에 와서 한국이 치명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항상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도망가기보다 한국 역사에 나타는 선비정신에 따라서 옛날 임진왜란 때 적들과 싸웠던 의병처럼 우리는 전래 없는 위협과 눈에 보이지 않은 위협, 나라를 희생을 할 위협을 향해서 눈을 열고 싸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나!

여러분들은 이미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신문, 지하철의 안내방송, 건물 밖의 광고판, 그리고 많은 사회적 지도자들의 성명이 온통COVID19에 관한 것입니다. ,COVID19 이외의 현안 논의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COVID19에 대한 대응은 시민들을 고립시키고 모욕하며 인간미를 잃어버리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심지어 교회 참석을 중단 하도록 강요를 하는 등 보이지 않는 세력의 무책임한 명령으로 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누가 왜 이러한 대응을 우리에게 강요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 어느 하나 말이 되는 것이 없으며 무언가 몹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과 모든 권력자들은 이러한 정책이 옳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아무도 이 잘못된 코로나 대응책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만약 정부나 기업,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떠드는 정치인들이 진정 우리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우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에 걸리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과학적 또는 의학적 조언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잠을 많이 자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친구 및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면역체계가 강해지도록 자신을 돌보라고 말해야 합니다. 공기오염을 줄여야 하고 시민들이 더 많은 자유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 종일 듣는 말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며, 우리를 구해 줄 백신 또는 여러 백신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뿐입니다. 또한 우리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은 병균으로 인해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공공건물에 들어 갈 수 없고 직장이나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는 말 뿐입니다

지금인가!

전 세계 소수의 사람들이 보유한 부의 집중은 지난 20년동안 크게 증가해 왔으며 지난 6개월 동안 극에 달했습니다. 이 수퍼리치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고 이제는 자신들이 돈, 미디어, 정부, 대학 및 유력 인사들을 통제하여 경제 전체를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지난 2월부터 가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주식을 투자함에 있어 일반인들을 희생시키면서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 끝없는 돈을 찍어내면서 창출한 투기적 경제가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경제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누가 그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했으며 또한 지난 6개월 동안 우리에게서 훔친 10조 달러가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경제의 붕괴가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말하고, 신문 지면에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올바르지 않는 쓰레기 같은 보도를 가득 채워서 그들이 어떻게 우리의

재산을 강탈 했느지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들여 유명인들에게 돈을 지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보도는 그 어느 것도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여러분들은 TV와 인터넷상에 난무하는 잘못된 공포로부터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또는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전해들을 수 없으며 배우지도 못합니다..

한국과 세계의 수퍼리치들의 목표는 무엇인가?

세계 다른 나라도 슈퍼리치들의 이와 같은 경제 장악 시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슈퍼리치들은 모든 중소기업을 파괴하고, 여러분들을 기업에서 공급하는 제품에 의존하게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중산층을 없애고 일반 시민들의 리더가 될 수 있는 모든 교육받은 사람들, 즉 교사, 변호사, 의사, 공무원과 같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기계나 온라인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전혀 필요 없는 경제를 만들고 싶어하며, 모든 결정은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일반인들은 서로 만나거나 어떤 식으로든 조직화할 방법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을 매수하거나 겁을 주는 방법으로 이 대규모 인수에 대해 전적으로 침묵하게 만들었지만 몇 달 안에 이 소수의 수퍼리치 그룹에 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될 것이고, 수퍼리치들이 의도적으로 파괴한 경제 속에서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이 감옥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엇인가?

코로나 바이러스19는 감기나 독감을 일으키는 흔한 바이러스의 수십가지 변종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바이러스의 정확한 성질은 의도적으로 불분명한 것이라고 만들어졌으며 이 바리러스에 대한 미디어의 공포와 과장된 광고는 시민들이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떠한 과학적인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코로나19는 노인들에게는 더 위험할 수 있지만 이 특별한 바이러스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습니다.

부자들이 이 이야기를 홍보하기 위해 고용한 강력한 세력은 정부관료, 의사, 교수, 언론인들입니다. 어리석은 무의미한 명령을 따르도록 훈련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 바리러스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고용한 전문가들도 그것이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거나 과학적인 분석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도록 길들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는가?

우리가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마스크는 의학적 목적이 아닙니다.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수단으로 유용하지 않으며 인체 면역체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더 해롭습니다.

그러나 이 마스크는 시민들을 집단 통제하는 한 방법으로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모든 사회를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시민(수퍼리치 제외)에게 시행되는 느리고 계획적인 고문 프로그램입니다.

고문과 정신조작을 위해 가면을 사용한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그것들은9.11사건 이후 일부 미군에 의해 관타나모만 교도소에 설치된 고문소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기 위한 실험에 도입했습니다. 관타나모만 교도소 고문 프로그램은 해리 해리스 현 주한 미국대사가 운영했었습니다. 그 고문 실험들은 지구전체를 감옥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의 첫 부분이었습니다.

시민들은(과학적 근거없이) 끊임없는 명령을 통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가면을 썼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음모에 가담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마스크효과의 핵심입니다. 이런 형태의 고문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어떻게든 악한 과정의 일부라고 느끼게 되어 권위에 저항 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일종의 ‘정신적 강간’입니다.

정신적인 강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고문하는 과정에는 강간은 매우 유리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으로서 동물로서 조금이라도 상대방에 대한 교류가 있다면 강간 당했을 때 100% 폭력이지만 이상한 반응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생물학적인 반응은 피해자가 자기도 강간의 가담자, 자기도 책임이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책감 때문에 상대방의 폭력을 폭력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가 원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고문 전문가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마스크 착용도 유사한 전략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주변 사람들 모두 마스크를 쓰면 자기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는 경찰은 하나하나 명령하지 않으니까 개인은 자기도 가담했고 원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4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그런 미묘한 죄책감을 이용하게 되면 시민들은 전체주의에 대하여 저항할 수 없는 심리상태가 됩니다. 책임자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책임은 자기한테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마스크 착용이 바로 그런 심리적 전쟁입니다.

마스크는 또한 다른 시민을 낯설게 보이게 하고 가족 구성원은 이제 낯선 사람처럼 보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장시간 마스크를 쓰도록 강요당하면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체포하거나 살해하는 것이 더 쉬어질 것입니다.

백신

신문에는 우리를 구할 한국, 러시아, 미국등지에서 개발되고 있는 백신에 대한 기사가 넘쳐납니다.

기사에서는 어떻게든 이 백신이 나오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이 필수 백신에 대한 세부내용은 전혀 말이 안되는 내용이지만 TV에서 보는 권위 있는 인물들이 모두 이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전문가들이 출연이 막힐 때) 언론에 출연할 수 있는 ‘과학자’들은 모든 것에 기꺼이 거짓말을 합니다.

진실은 진짜 백신이 개발되려면 몇 년이 걸리고 바이러스 백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백신에 대한 모든 아이디어는 엄청난 홍보 게임을 하며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의도된 것입니다.

수퍼리치들은 여러분이 이 백신을 복용하도록 강요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백신을 복용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일을 할 수도 없고, 병원에 갈 수도 없으며, 쇼핑을 하러 갈 수도 없고 심지어 대중교통을 이용 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1) 전 세계가 이 불필요한 백신을 접종하도록 강요받으면 수십억 달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빌게이츠와 같은 인물들은 백신에 대한 연구, 생산, 평가를 대중들이 위험에 대한 객관적 평가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만약 신문들이 다음 달에 COVID20 이나 COVID21 백신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당신도 백신을 복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이 백신에는 센서가 여러분의 남은 일생동안 24시간 내내 여러분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할 수는 나노 칩이 포함될 것입니다. 그 나노 칩은 기업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3) 이 백신에느 자신의 DNA를 변경하고 신체와 면역 체계를 영구적으로 약화시켜 더욱 의존하고 약하게 만드는 변형 된 RNA가 포함 될 것입니다.

한국이 타겟으로 선정되었는가!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이 이른바 ‘비대면’ 경제(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접촉 없이 생활하며 일하는 것) 실험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경제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코로나 이후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힘의 원천을 파괴하는 심오한 ‘리셋(reset)’이나 ‘패러다임 전환 경제발전’에 있어서의 한국의 역할을 홍보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8월 11일에 세계경제포럼의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로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이동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계획은 세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한국에 특별한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이 통제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이런 생활 접근법이 현 문재인 정부의 ‘뉴딜’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한국이 이 목표에 선정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한국인들은 국가 발전과 세계로부터 ‘선진국’ 으로 인정받는 것에 강한 집착을 합니다. 지도자들과 많은 시민들은 현재 한국이 COVID 19와의 전쟁에서 어떻게 ‘리더’가 되었는지에 대한 세계 언론의 칭찬에 현혹되어 왔으며, 처음부터 모든 과정이 사기라는 것을 은밀하게 알고 있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성공에 대해 자랑했습니다. 베트남도 중국처럼 선전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다국적 은행들의 전략은 ‘새로운 아시아 시대’의 영광을 이 지역 정부들로 하여금 강력한 다국적 기업을 우대하는 위험한 신기술과 경제 정책을 펼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압도적으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2)

한국인들은 기술과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전 문화를 구축하였으며 거의 예외 없이 스마트폰 과 온라인 쇼핑을 편리하고 긍정적인 발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사회, 지역경제, 직업, 그리고 스스로에게 미치는 심각한 위험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약점이 한국을 쉽게 착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구 고령화는 또한 많은 유권자들이 최근의 기술적, 사회적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한국 언론은 완전히 단순하고 무분별한 퍼프 조각으로 전락했으며, 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렸을 때 스스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나라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은 교육의  전통의 최고의 가치를 잃었고 이는 판단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떻게든 쉽고 빠르게 뉴스를 접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로 꼽힙니다.  

4)

한국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와 같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벤치마킹되고 있으며, 중국 및 기타 국가 지방 정부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만약 한국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고 모든 교류를 온라인상에서 하도록 강요하는 완전한 ‘노 터치’ 정책을 채택한다면 이러한 돌파구가 IT 기업들과 다른 관심 있는 기업들이 많은 나라에서 그러한 정책을 통해 강제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될 것입니다. 모든 한국인들이 예방접종을 받기로 동의하거나 실업과 기아에 직면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이에 따를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한국을 무너뜨리고 은행과 다국적 기업이 이를 온라인상에서 통제하는 ‘그림자 정부’로 대체하는 것이 이 계획의 핵심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지난 1년 동안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부가 어떻게 껍데기로 전락했는지를 거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인가?

시민들은 분별없는 언론, 기업이 지배하는 정부, 그리고 우리에게 거짓말만 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온순한 동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의 전쟁은 마스크와 백신의 강제 사용에 국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길거리와 TV에서 우리를 음식, 섹스와 같은 즉각적인 만족에만 괸심이 있는 동물,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동물로 만들려는 광고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환경파괴, 전쟁의 위협, 부의 집중, 우리 경제의 붕괴등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진짜 우기이지만 우리는 가짜 바이러스의 대유행만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 “북 ‘드론∙3D 프린팅’ 미래안보 위협” (자유아시아방송)

자유아시아방송

페스트라이쉬 소장 “북 ‘드론∙3D 프린팅’ 미래안보 위협”

싱턴-김소영  

20200207

민간 연구소 ‘아시아인스티튜트’의 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소장은 북한이 드론, 즉 무인기나 3D 프린팅 등 신기술을 이용해 동북아 지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김소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7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열린 학술 발표회에서 동북아 지역에 안보 위협을 가져올 수 있는 북한의 신무기에 대해 거론했습니다.

그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위협이 닥쳤을 때 늑장 대응을 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며 10여년 뒤 북한이 개발해 사용할 수 있는 북한의 신기술에 대해 미리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북한이 드론, 즉 무인기나 차세대 로봇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미국 뉴욕에 있는 바드 칼리지 드론연구센터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수백에서 1천개의 무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에는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의 모델을 변형해 개발한 대공 유도무기용 표적기나 무인타격기 등도 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또 프린터로 평면이 아닌 입체도형을 찍어내는 기술인 ‘3D 프린팅’ 역시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저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5 년에서 10 년 안에 가능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기관총이나 드론, 전투기 등 어떤 것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동북아 지역 안보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가 신중히 다뤄야 할 북한 문제입니다.

한편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동북아 지역의 핵확산 문제 차원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북한 자체의 위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의 핵 경쟁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북한의 핵무기 증가가 가져올 가장 위험한 핵확산 문제는 중국과 일본도 핵무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일 양국 간 무기경쟁이 벌어지면 각각 5,000~1만 개의 핵무기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페스트라이쉬 소장은 이러한 핵무기 경쟁이 동북아 지역 전체의 안보를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동북아, ‘위기’ 해결보다 ‘변화’ 추진에 나서야” 프레시안 2020년 1월 25일

프레시안

“동북아, ‘위기’ 해결보다 ‘변화’ 추진에 나서야”

2020년 1월 2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오늘날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무한한 재난에 직면해 있는데 이는 중국과의 경솔한 무역 전쟁, 일본 및 한국과의 동반 관세 분쟁 및 중국을 군사적 위협으로 홍보함으로써 광범위한 협력 노력을 악화시킨 데 따른 결과이다. 우리는 점잖은 무시가 악의적인 무시로 전이되는 것을 조용히 지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아시아인들은 말하기를 꺼리는 편이지만, 워싱턴을 파괴적인 세력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트위터에 의해 지배되는 행정부와 국제 사회에 대한 ‘트럼프 퍼스트’의 새 버전은 UN 본부가 위치해 있고 핵확산 금지, 무역 및 테러 방지 등을 처리할 국제 조약을 지지하며 자유의 여신상을 통해 구현된 미국의 국제주의 전통을 묻어 둔 채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속화할 뿐이다.  

동북아의 이러한 위기는 평양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탐욕스럽고 자기도취적인 워싱턴 모델이 아시아의 수도들에서 새로운 주인을 찾은 데서 기인한다.

미국이 잃어버린 명성을 회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시아 지역에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신냉전을 조장하는 데에 납세자들의 돈을 실제로 소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일본은 한국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한국, 일본, 중국 및 다른 국가 간의 무기 경쟁 및 경제 전쟁 발생에 따른 상상할 수 없는 악몽을 피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기 전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러한 전개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이 끝남을 포함해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러한 동북아의 위기는 현란한 정상회담이나 의회에서 일부 법을 제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변화하는 동북아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방법과 뚜렷한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  

일본의 철학자 오규 소라이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체스 장인이 있다고 한다. 규칙을 완벽하게 알아서 모든 게임을 쉽게 이길 수 있는 사람들과 체스는 경기할 규칙을 제정하는 사람들의 두 부류이다.  

후자의 접근 방식은 눈에 띄게 생소하다.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당시 제정된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점진적인 개혁만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점점 약화되고 있는 미국의 지위를 바꿀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정의하기 위해 시작한 투쟁은 타자의 악마화가 조건이 아니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답이 나올 수 있다.  

최근 UN의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진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은 전 세계에서 기후 문제에 대해 대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절정에 달했음을 드러낸 사례이다. 수만 명의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기후변화의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도록 기존의 모든 경제, 정치 및 문화적 측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그들은 기후변화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중국과의 대립을 해결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장려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된다.  

미국은 기후변화 자체가 해수면 상승, 해양 온난화, 사막화의 확산 또는 열대성 폭풍우와 같이 동북 아시아의 주요 위협이 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으며 향후 수년간 수백만 명이 죽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가정을 변경해야 하는데, 그레타 툰베리가 요구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미국이 비행기, 배, 총알 및 미사일 등의 군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왔던 데서 벗어나 화석 연료의 사용 금지와 숲의 복원 및 해양 및 강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으로 안보의 주요 임무를 재정의함을 의미한다. 현재 최대 환경 오염 유발자 중 하나인 미군으로 하여금 오염을 정화하고 석유 시추 및 석탄 사용을 금지하는 데에 주력하도록 기본 임무를 재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비전은 지나치게 이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너무 큰 위기여서 모든 것을 재고해야 한다.  

동아시아의 경우 기존의 전투 수행에서 벗어나 나무를 심고 생태계를 보호하며 기업들로 하여금 지구의 소중한 자원을 영리 목적으로 파괴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에 주력하도록 미군의 주요 임무를 변경함으로써 여러 전선에서 일본 및 한국군과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각국의 군대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및 완화에 군사적 초점을 맞추게 되면 중국과의 군사 협력도 쉬워질 것이다.  

군대는 애초에 그러한 변화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어쨌든 기존의 안보 및 방어 개념을 고수할 것이다. 그러나 군대가 그런 방식으로 역할을 하기 시작할 경우 민간 부문보다 그러한 변화를 더 빠르게 이행할 수 있다. 

군대는 수익성에 대한 우려 없이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장기 예산을 책정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다음 달까지 모든 전력을 태양열이나 풍력을 통해 생산하도록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 한국, 일본의 노하우를 결합함으로써 그러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기후변화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위험한 군사 시설 건설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국인 북한 전문가가 쓴 북한 서적은 판타지다” 프레시안 2020년 1월 26일

프레시안

“미국인 북한 전문가가 쓴 북한 서적은 판타지다”

2020년 1월 26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1.
잠시 시간이 있다면 교보문고의 영어 도서 섹션에 가보는 것이 좋다. 영어 도서 섹션의 중간에 위치한 해외 독자들을 위해 영어로 출간된 북한 관련 도서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들은 밝은 색상의 매력적인 표지들로 덮여 있다.

북한 관련 서적에는 세 가지 장르가 있다. 첫 번째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고 무기를 사용하여 한국, 일본 및 미국을 공격하려 하는 호전적인 군사 독재국가로 북한을 묘사한 유사 학술 서적이다. 이 책들은 독자층이 다소 제한되어 있으며 북한의 의도나 군사력을 진지하게 비교 분석하기보다는 한국, 일본 및 미국이 고가의 무기 시스템을 구매해야 함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판되고 있다.

이러한 무기 시스템의 구매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오해의 결과가 아니며 군수 산업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은행 및 다른 투자자들이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일반인들이 낸 세금을 사용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의도적으로 그러한 이미지를 널리 홍보하는 것이다.

나는 많은 이들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이 지루한 책들을 정말 끝까지 읽었을 것인가에 대해 의심이 든다.

북한 관련 서적의 두 번째 장르는 수많은 지독한 시련과 끔찍한 고통을 겪은 후 한국이나 미국에서 자유를 찾은 용감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북한의 압제적이고 범죄적인 환경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묘사한 책들이다. 대개 탈북자들이 서구 작가의 ‘도움’을 받아 쓴 이러한 이야기들은 극적인 반전과 서사 구조를 조합함으로써 북한을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끔찍하게 보이도록 만들었고 서양과 서구 문화가 안전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함을 시사함으로써 위험하고 무서운 북한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모험 소설로 더 잘 분류되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섹션들이 포함되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더욱 강렬하고 호소력을 갖도록 서구 편집자들에 의해 각색되었다. 이러한 책들은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들처럼 가슴 아프거나 끔찍한 장면들을 설명하는 데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책들이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지에 반해서 한국에 머무르도록 강요당하는 방법과 한국이나 미국에서 학대 및 조종당하는 방법 또는 지배 계급이 노동자와 농민을 학대하는 전 세계의 다른 많은 개발 도상국들과 북한 사이의 유사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북한은 여전히 독자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
나는 약 2년 전 서울에서 열렸던 공개 행사에서 작가로서 새로운 경력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한 탈북 여성 옆에 앉을 기회를 가졌다. 그녀는 탈북자 중 가장 유명 인사는 아니지만 탈북자의 이야기를 출판 시장에 내놓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행사에 에이전트와 함께 왔는데 이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행사를 위해 진한 화장을 하고 매력적인 드레스를 입었다. 그녀는 북한에 있는 형제 자매들의 대변인이라기 보다는 모델이나 가수가 되려고 노력 중인 사람처럼 보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청중의 질문에 답변했을 때 나라 전체가 전 세계 어느 곳보다도 억압적이고 폐쇄적이며 전체주의적임을 시사하면서 북한에 대한 모든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북한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없었고 지나치게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자란 나라를 묘사하기보다는 정해진 대본에 따라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북한 탈출’ 이야기를 읽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나는 인위적인 구성에 금방 질려버리게 된다. 나는 북한에 가본 적은 없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북한을 기상천외할 정도로 악의 소굴로 보이도록 윤색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비록 극소수지만 이 이야기들 중 일부는 북한의 검소하고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았으며 스마트폰이 없는 생활의 미덕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탈출’ 소설 장르는 필연적으로 북한이 자유롭고 개방된 시장 경제를 채택하지 못했고 정부가 자유 무역을 개방하려는 의지가 없으며 자유 무역을 위한 시장 개방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결여된 것이 현재 북한이 직면한 기근과 빈곤의 원인임을 암시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 경제가 미국과 한국에 미친 엄청난 피해를 살펴본다면 코카콜라와 디즈니 상품의 소비가 국가에 긍정적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전 세계인들은 이른바 자유 무역에 매우 적대적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대량 광고를 통한 소비문화의 홍보로 인해 엄청난 불행이 발생했다.

3.
그러나 또한 우리는 북한 사회의 잔인성이 미국, 일본, 한국에서처럼 부와 지위의 찬미에서 비롯된 지배 계급들의 이기심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소비재 상품의 보유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문화의 진흥은 북한이든 한국이든 관계없이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그러한 문을 여는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해야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토록 가난한 시기에 그러한 소비 주도 경제에 문을 여는 것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북한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시장 경제라고 말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소비에 집착하는 한국이 어떤 의미에서든 북한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강철환이 피에르 리굴로의 도움을 받아 쓴 베스트셀러 <평양의 수족관: 북한 강제 수용소에서 보낸 10년(The Aquariums of Pyongyang: Ten Years in the North Korean Gulag)>을 살펴보자. 저자 강철환은 자신과 가족들이 어리석고 세뇌된 북한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강인하고 유능했음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아서 북한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에 느꼈던 안도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북한 감옥의 야만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북한 감옥이 전 세계의 다른 감옥들보다 더욱 끔찍한 곳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 책에서 칭찬하고 있는 미국은 북한을 비롯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인구를 감옥에 수감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감옥은 악랄하고 위험하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 감옥들의 잔혹성에 대한 비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저자에게 그러한 비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성매매범들로부터 학대받았던 탈북 여성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다룬 박연미의 저서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In Order To Live: A North Korean’s Journey to Freedom)>(정지현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를 살펴보기로 하자. 이 책은 대부분 실제 사건들에 기반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북한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듣고 싶어 하는 서구 독자들에게 영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으로서 박 씨의 책을 읽었을 때 북한을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소개하기 때문에 필자와 같은 독자들이 이 책에 끌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북한은 한국인이나 미국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제도와 도덕이 붕괴되는 데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를 투영할 수 있는 장소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여성 학대가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눈을 감도록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인간적 경험을 무시하고 북한을 정말로 특이한 공포의 대상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는 북한인들이 겪고 있는 기아와 박탈 또는 자유의 부재를 미국의 흑인들이나 멕시코의 원주민 또는 한국에 사는 캄보디아 이민자들의 경험과 비교한 적이 없다. 그러한 비교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유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북한의 이데올로기보다는 무자비한 시장의 속성이나 부의 집중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할 것이다.

4.
북한 관련 서적들의 세 번째 장르는 제3자들의 보고서나 단기간의 북한 여행을 통해 스스로 관측한 바에 근거해 작성된 서방 전문가들의 글로 이러한 글들은 북한의 모든 측면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전체주의적이며 범죄적 특성을 가진 것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 책들의 범위는 다양하며 일부는 다른 책들보다 더 객관적이지만 대부분은 이 고립되고 끔찍한 나라가 얼마나 기괴하고 으스스하며 기이하고 잔인하며 비인간적인지를 허구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이러한 책들은 북한의 지역별로 다른 문화나 지리적 차이를 제제로 설명하지 않으며 현직 정부 관리, 정책, 인프라나 핵무기를 제외한 과학 기술에 대해 상술하고 있지 않다. 북한과 관련된 인기 있는 영어 도서에서 지난 500년간 북한의 각 지역이나 도시의 고유한 특성이나 지역별 제도적 변화에 대해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프랑스나 독일에 관련해서는 그러한 지역적 특성이나 제도적 측면을 다룬 책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지 북한은 전혀 하나의 국가로 취급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들은 북한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차라리 다른 나라들과 달리 동양에 대한 환상으로 국가 전체를 나타내려는 문학적 프로젝트에 가깝다.

이러한 분석을 위한 접근 방식은 서양인들이 터키와 아랍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인도, 중국, 일본으로 확대된 동양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데에서 시작된 ‘오리엔탈리즘’의 오랜 전통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다. 서양인들은 이러한 ‘동양’ 문화를 유럽의 모든 규범으로부터 벗어났으므로 매력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이하고 알 수 없는 신비한 세계로 보기를 원했다.

19세기와 20세기 오리엔탈리즘의 전통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고 오히려 에드워드 사이드의 고전 연구 <오리엔탈리즘>에서 입증된 것처럼 국내 문화와 정치를 정당화하고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중요했다.

영국은 인도가 매우 낙후되어서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영국이 주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도를 착취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인도나 터키를 기이하고 흥미롭지만 부패하고 비이성적인 문화로 묘사함으로써 그러한 동양 국가들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잔인하게 여겨왔던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잔인한 식민지 전쟁에 참여했을 때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5.
북한은 이 북한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미국에서 정확히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코카콜라를 마시지 못하거나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을 볼 수 없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가 묘사될 때 그러한 설명은 북한에 대한 설명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과 미국의 소비 지향 문화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대중문화. 북한 연구 서적을 읽는 독자들은 돈이 충분하다면 자신이 이러한 모든 소비재에 접근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 상태를 기이하고 권위주의적인 북한과 대비해 이를 정당화하는 것은 증가하는 자살과 과도한 경쟁에서부터 시작해 SNS 중독 및 가정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국을 휩쓸고 있는 심각한 병폐들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들로 언론 매체들은 여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끔찍한 북한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의 현상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된다. 그렇다고 북한에 비극이나 잔인성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구의 전문가들이 쓴 두 권의 북한 관련 유명 도서인 브라이언 R. 마이어스의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The Cleanest Race)>(권오열·고명희 옮김, 시그마북스 펴냄)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정치학자 빅터 차의 <불가사의한 국가(The Impossible State)>(김용순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펴냄)를 살펴보자.

북한 전문가를 자칭하는 브라이언 R. 마이어스는 미국 언론에 현 통치자 김정은 및 그의 아버지 김정일과 할아버지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개인 숭배가 북한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에 대해 기고하면서 북한의 정치 선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민족의 순수성에 대한 강조가 2차 대전 이전 일본의 파시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마이어스의 책에서 많은 부분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특이하게 기이하고 무서운 나라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북한의 구호에서 인종적 순수성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오해와 차별을 부추기는 것이 위험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이어스의 책은 북한의 인종 정책과 미국이나 유럽 정치에 사용되는 인종 정책 사이의 유사성을 전혀 밝히지 않는다. 그러한 비교는 지나치게 계몽적이지만 저자가 자신의 독자들이 보기를 원치 않았던 정치에서 ‘인종적 순수성’의 문제는 후진적인 북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마이어스는 축구 경기나 학생 집회에서 드러나는 북한의 행동을 심하게 병든 정치 체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의 책 속에는 북한이 자신들 나름의 방식으로 북한인들을 이해하거나 또는 북한 문화의 왜곡이 억압적인 정부뿐만 아니라 북한이 겪었던 잔혹한 전쟁과 외부적 요건으로 인해 강요되었던 지독한 고립의 결과였음을 분석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다.

그러나 내게 있어 이 책의 모든 전제는 지성에 대한 심한 모욕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인종적 순수성을 지향하는 북한의 이데올로기는 뭔가 불안한 것이 있다. 그러나 무자비한 경제 확장을 목적으로 외국에서 수백만 명을 살해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명목하에 천연자원 확보를 위해 전쟁에서 열화우라늄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미국의 이데올로기는 어떨까? 그것은 위험한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마이어스의 책에서는 ‘북한은 미국이 제국주의 및 팽창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한 북한 전문가들에게는 북한을 스탈린 시대 러시아나 나치 독일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마이어스는 북한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필요하다고 시사한다. 물론 그 진술은 사실이다. 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은 미국에 대해 저항한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모으고 그들의 권력을 정당화한다.

물론 미국이 지속적으로 북한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종전 평화 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정치인들이 이러한 주장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어스가 제기하지 않으며 제기할 수도 없는 질문은 미국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지 여부이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질문은 터무니없을 수도 있겠지만, 물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미국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자국 내의 지독한 부의 편중을 줄이거나 수천 개의 핵무기로 인한 핵전쟁 위험을 줄이는 데에 자원을 할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미국에서는 광적인 무기 구축 사업에 점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기 제작은 몇 안 되는 미국 내 제조 산업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미국 경제의 군사화가 정당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상화된 북한의 위협은 경제 왜곡을 정당화하는 데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북한은 미국의 광기 어린 경제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위협이다.

6.
다음에는 CSIS의 우수한 한국 전문가 빅터 차와 그의 판타지 소설 <불가사의한 국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이 책에서는 북한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나라로 너무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서 붕괴되어야 마땅한데 계속 유지되고 있는 사회로 소개하고 있다. 빅터 차에게 있어 북한의 미스터리는 그것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전기 사용이 극도로 제한되어 자동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불능’ 도시로 간주되는 평양의 거리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최대한 빨리 자동차를 제거하고 전기 사용을 크게 제한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 북한 청소년들이 기업의 이익 증대를 추구하기 위해 중독되도록 독려하는 스마트폰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여부를 묻는 것은 좋은 질문이다.

또한 이 책은 북한 주민들의 상대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기이하고 후진적인 것으로 여김으로써 부패한 미국 문화를 조장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았던 미국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묘사하면서 광물 자원을 착취하고 야생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해 멸종에 이르게 했으며 거대 도시들을 건설해 환경에 큰 피해를 가져왔던 서구인들과 매우 유사하다.

이 책은 자유롭고 개방된 국가인 미국과 대조적으로 북한이 조잡하고 조작된 선전을 통해 김 씨 일가의 학정에 대해 사람들을 오도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 실제로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큰 집에서 살면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면 자유롭지 못하다고 제시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깊은 모순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도록 하는 선전 선동의 걸작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불능’ 국가는 실제로 잔인하고 억압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 자신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증가하는 광기와 국내에서의 통치 붕괴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은 미국 정치의 오랜 부패의 결과일 뿐이며 그 기원은 2000년 선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미국의 활동을 제어할 수 없다.

빅터 차에게 북한은 미국에서 점점 확산되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실질적 불확실성을 투영할 수 있는 장소이다. 미국인들이 신문을 선전으로 가득 채우는 방식에 대해 스스로 정직할 수 없다면 대상이 ‘미국’이 아닌 ‘북한’일 경우에는 적어도 이 진실을 간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의 사회적 모순을 그처럼 생경한 북한에 전달, 계획하는 것은 많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미국으로 알려진 ‘불능’ 국가에 대해 더욱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미국의 사이코 민주주의” 다른 백년

다른 백년

“미국의 사이코 민주주의”

2019년  4월 8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미국 보스톤 정신분석 연구소(Boston Psychoanalytic Society)의 랜스 도즈 (Lance Dodes) 박사는 MSNBC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된다.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 내지는 간단히 정신병환자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트럼프는 하루는 북한과 중국을 전쟁으로 위협하다가 갑자기 다음날 그 지도자들에게 애정을 퍼붓는 중이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류의 생존이 경각에 달렸다는 과학적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기후변화 연구를 중단시켰다. 측근들과 함께 미국이 모든 군축 협정을 탈퇴하도록 종용했고, (사전 논의도 없이) 우주 군사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발족시킴으로써 재앙을 우리 턱 밑까지, 1950년대보다도 가까이, 어쩌면 세계사상 가장 가까이 불러왔다.

지난 2월 5일 연두교서에서는 지금의 “경제번영”은 전임 대통령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이라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의 이 호황은 고삐 풀린 투자은행들을 등에 업은 기업들이 주식을 환매하며 탄생했을 뿐, 진짜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파산 직전 인구, 홈리스, 재소자 등은 못 본 채 했다. 정색하고 누구에게든 아무 말이나 하는 탁월한 능력을 다시금 선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교과서 상 사이코패스의 모든 특징을 몸소 보여줬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조력자가 없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최악질 사이코패스 존 볼턴(John Bolton)의 도움이 있었다. 볼턴은 이 세상에 핵전쟁을 불러올 생각만으로 신이 나는 사람으로 그동안 시리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을 동시에 지지해왔다. 미래의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그의 열정은 뜨거워진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재림 (The Second Coming)”을 쓰며 볼턴같은 사람을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볼턴은 “피로 어두워진 파도(blood-dimmed tide)”의 “빗장을 열어(loosed)”, “선한 자는 모든 신념을 잃고 악한 자는 격정으로 가득한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대혼란을 가져왔다. 여전히 양심이 남은 또는 전두엽 피질 기능이라도 가능한 자들이 마치 난파선을 탈출하는 쥐떼처럼 미 국무부와 국방부를 떠나자, 볼턴은 정책과정의 공백을 독차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워싱턴 정가의 모습은 어떠한가?

요즘의 “민주당”을 한번 살펴보자.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민주당, 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파병부대 격려”를 위한 그녀의 아프가니스탄 방문계획을 공개하자,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것으로 추정,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보적인 펠로시도 애초에 미국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간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 희생된 (아프간 시민은 차치하고) 미국 노동자의 수치에 대해서는, 왜 미디어에서 더 이상 미국 군대 이야기를 보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대신 중국이 위구르의 수백만 무슬림을 탄압한 소식을 알리기 바빴다. 구체적인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군대에 희생된 수백만 무슬림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작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무시하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펠로시는 열성(劣性)사이코패스이다.

버락 오마바(Barack Obama)는 어떤가? 오바마 이름만 들어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 오바마 특유의 그 유쾌한 태도 때문에 그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보통 사람들을 이용한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진정한 개혁가에게 명예훈장처럼 따라붙는 개인적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오바마가 어떻게 Goldman Sachs와 JP Morgan에 영혼을 팔았는지 잊은 것은 아닌가? 거저 얻은 존경은 훨씬 더 달콤한 법이다.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최근 “비커밍 (Becoming)”이라는 책을 냈다. 정식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디스토피아를 상징한다. 그녀는 베일에 가려졌던 개인사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며 미국 내 거버넌스의 몰락과 문명사회의 야만적인 타락은 완전히 가려버렸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처럼 미셸도 자신이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책에서 작금의 이 악몽이 시작된 첫 8년을 이끈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를 자신의 “공범”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단순 말실수가 아니다. 정신병 말기에 접어든 진보진영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부부는 애초에 진정한 “반전” 진보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회주의” 진보주의자,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트럼프의 연두교서에 그답게 대응했다.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트럼프의 연설에 담긴 무의미한 제스처와 거짓 주장에 박수를 친 것만으로도 최악인데, 샌더스의 근시안적 시각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는 노동자의 임금과 사회 전반의 “불공정”에만 주목하느라 군비의 엄청난 증가나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쟁 위협, 심각한 부의 집중 등 그의 친구 오바마 정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는 무시했다. 투표자 억압이 있었다는 점이 유감스럽다고 했을 뿐, 그러한 행위가 흉악범죄라는 점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언급을 잊었다.

어쩔 수 없이 샌더스를 지지했더라도 그가 지난 선거에서 한 일을 꼭 기억하자. 그는 유세에 운집한 수만 명 노동자의 고통어린 삶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 절절한 연설에서 “혁명”을 이야기하며, 한 달 집세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자들”과 싸울 수 있도록 현금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그의 요청에 응답했다. 그들은 목표를 위해 단결했고, 샌더스를 승리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데 경선 표를 조작했든, 샌더스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든, 클린턴이 앞서나가자 샌더스는 침묵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지지한 보통 사람들의 표가 무너지는 것이 그들 모두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 문제인 듯 굴었다.

샌더스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너무나 빠르게 클린턴에 굴복했고, 그의 선거운동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은 빈손으로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연설에서 공정한 사회를 역설하고, 노동자의 돈으로 선거운동을 하다가 권력에서 발을 빼지 않으려 그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가 있지 않은가.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혼란에 빠진 미국 청년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그녀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질지 몰라도, NATO와 러시아 제재를 찬성하는 점, 민주당에 묶여있다는 점 등을 보면 딱히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마틴 루터 킹의 날,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소수의 부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제도는 부도덕하다”라고 한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다만, 의회에서의 발언은 로비스트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녀는 부자들이 전쟁도발, 시세조작, 전 세계를 좀먹는 화석연료 등을 통해 부정으로 축적된 재산의 몰수는커녕, 해외 조세피난처의 폐쇄를 위한 법안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주의”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도 있다. 해리스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무단결석하는 경우, 그 부모에게 징역을 포함한 형사 처분을 적용하는 법안을 지지했고, 피고에게 증인의 신뢰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했으며, 경찰관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자해방지용 정신병동에 머무르는 진보주의자다.

미국 사이코 민주주의의 기원

이런 정치판 사이코패스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우주선을 타고 떨어진 것은 아니다. 행동은 외계인만큼 이상하지만, 이들은 어느 미친 나라의 산물, 100% 미제다. 여전히 금문교와 헐리우드, 자유의 여신상, 그랜드캐년은 건재하지만, 그 이면의 미국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가족, 이웃, 동포 사이의 사회적 유대는 상업과 소비 열풍 속에 닳아 없어졌다. 정치와 시민사회가 있던 곳에 이제 황량한 사막만이 남았다.

오늘의 이 악몽을 모두 사회 최고위층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동안 이들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독려하고, 심지어 보상까지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지경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보상을 제공한 것은 부자들 뿐 아니라, 대부분 상위 중산층이었다. 한 때는 중산층이었다가 몰락한 주변의 홈리스를 돌보기보다는 제2의 스티브 잡스, 제2의 빌 게이츠가 되는 것에 집중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사이코적 행태는 사회 모든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변호사, 의사, 교수, 언론인, 기업인, 정부기관장, 그리고 물론 노동조합의 “노조간부”도 예외는 아니다. 기득권을 누리는 자에게 이 무자비한 정부와 기업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러한 정책과 그들의 부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Exxon의 주주가 되는 것과 기후변화 또는 민영교도소의 부상과 투자은행의 수익 간의 관계 등은 총명하고 젊은 하버드 대학생조차 떠올릴 수 없는 금기 주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고방식 덕분에 부자 동네에서 “진보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스타벅스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대형마트에서 채식 쇼핑을 하면서, 핵전쟁의 위협과 생태계의 붕괴에는 무뎌지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는 어떤 제품을 미국 포로(노예) 또는 전 세계 공장에 갇혀 반 노예 생활을 하는 노동자가 만들었을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저렴한 물건을 구입하기 쉽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사는” 태도다.

좋은 교육을 받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그 생각을 타인들과 나눌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족들과의 휴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 같은 지루한 대화만 계속할 뿐이다.

이들 상위 중산층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멍청하다”고 치부하는 모습은 더더욱 이상하다. 이들은 인상파 작품과 아방가르드 무용의 가치는 알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한 학교 밖에 없는 동네에 사는 건 어떨지, 그런 동네에 살면 온통 가짜뉴스만 쏟아내는 미디어 밖에는 볼 수 없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절박함에 응답해주는 것은 오직 우파 대형교회 뿐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한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후, 다수의 “선량한 미국인들”은 이 가련한 부정의 문화에 빠졌고 사이코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을 떼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트럼프가 보여주는 천박함이 자신에게는 무해할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독일 정치가 잔혹한 광란으로 타락한 1930년대를 묘사한 것처럼 “지루함은 무해함의 동의어가 아니다.”

병리학적 특성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이제 민주당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다. 정책논의에서 제3자는 배제하고, 반대해야 마땅한 여당과 시시덕거리면서, 뒤로는 퇴직수당을 모으는 게 바로 민주당의 리더들이다. 이들은 단 한 발자국도 트럼프의 범죄에 맞설 수 없다.

혹자는 부자 몇 명의 배를 불리느라 지난 2년간 경제 파탄을 겪었으니, 교육을 받은 미국인이라면 하나 둘 모여, 부자들과 군국주의, 백인 민족주의가 만드는 작금의 도당을 뒤집을 강력한 시민운동을 조성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틀렸다.

이 나라의 제도가 아무리 망가져도 고등교육을 받은 미국인들의 “진보” 민주당 그리고 “보수” 공화당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할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결국 미국에 정당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침묵의 , 여름, 가을, 겨울

1960년대 수백만 시민이 거리로 나와 반체제 시위에 나서게 한 경고신호는 지나친 지 오래다. 현재의 상황은 당시보다 심각하다. 인류 멸망도 가능한 핵전쟁과 기후변화, 불합리한 부의 축적 등이 산재해있다. 자리를 박차고 행동에 나서지는 못할망정, 이런 문제를 주변 친구나 이웃과 논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로마제국 말년과 같은 데카당스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네로 황제의 리얼리티 쇼 버전 내지는 칼리굴라 황제의 모조품 정도 되지 않을까? 트럼프가 세계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자신의 딸 이방카(Invanka)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 로마제국 후기와 확실히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 (Viktor Horsting) 그리고 롤프 스노에론(Rolf Snoeren)이 만든 패션회사 빅터앤롤프(Viktor and Rolf)는 참신한 오트쿠띄르를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찾고자 했고, 실제 그들의 패션쇼 포스터 중 하나는 특히 크게 눈길을 끌어 이들의 회고전에 선택되기도 했다.


Viktor and Rolf Fashion Artists 25주년 기념

그런데 이 포스터는 보는 입장에서는 참 혼란스럽다. 화려한 붉은색 담요를 몸에 두르고 침대에 누운 부유해 보이는 백인여성이 등장하는데,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구겨진 베개 위에 흩어져있다. 그녀는 수평의 풍경과 달리 수직으로 그려졌고, 르네상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처럼 오른 팔에 금발의 아이를 살포시 안고 있다.

그런데 부를 상징하는 이 이미지는 배경의 불편한 상황과 배치된다. 엄마와 아이는 폐허가 된 집, 아마도 허리케인 카트리나 또는 허리케인 마이클의 잔해 앞에 서있다.

인프라의 붕괴, 기후변화, 긴축재정 등으로 고생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이 여성이 대조되면서 그녀의 부와 특권이 더욱 매력적으로, 흥미롭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 이미지가 더욱 재미있는 점은 부자들 그리고 이들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 뜰에 작은 농장을 지어 평범한 소작농의 삶을 즐겁게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

이 이미지에서 미적 쾌감을 느낀다면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일 것이다. 결국 부자들은 분기별로 수익을 내려면 채굴산업과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이윤추구는 재앙을 부르는 기후변화를 야기했고, 시민들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없게 만들었다.

이들은 거대한 벙커와 땅을 사서 기후변화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신도 속이고 있다. New Yorker에 실린 에반 오스노스(Evan Osnos)의 기사, “슈퍼리치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는 방법 (Doomsday Prep for the Superrich)”에 이와 같은 부자들의 움직임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이러한 병든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청년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유한 아이들이 자기도취에 빠져 노닥거리는 광고를 봐야만 한다. 광고계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롤 모델로 제시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많이 가진 자를 찬양하는 것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어떻게 미국의 정신을 멈췄나

이 사이코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데카당스 시대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일까?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 기후변화와 핵전쟁 위험을 가볍게 무시하는 극단적인 인지부조화를 보면 분명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빠른 기술발전으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우리는 게임과 소셜 미디어, 포르노, 위기대응능력을 망가뜨리는 그 밖의 오락 활동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스마트 폰이 우리의 두뇌 속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생을 마감할 즈음에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카툰 작가 스티브 커츠(Steve Cutts)는 “아 유 로스트 인 더 월드 라이크 미? (Are you lost in the world like me”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악몽과도 같은 세상을 그려냈다. 이렇게 체득된 수동성은 사회계층과 시대를 아울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작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The Shallows)”라는 책에서 어떻게 인터넷이 즉각적인 자극에 반응하여 복잡한 사고를 하는 두뇌의 능력을 마비시키다시피 하는지 광범위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우리가 글로벌하게 서로 소통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그 기술에 의해 교묘하고 모순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정보의 망망대해 위에서, 스스로 생각할 물 한 방울이 없어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인간 두뇌의 신경가소성이 오히려 경직된 행동을 독려하는 등,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뉴런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생성한 회로가 매혹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계속 이 회로를 사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구글 검색이나 페이스북 포스팅이 주는 빠른 응답은 뉴런을 자극하고, 쾌락의 흥분제를 분비한다.

오래 전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고, 즉 개인의 오랜 경험이나 사회, 문화적 변화의 경험 등을 위해 사용되었으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신경 회로는 보이지 않는 신경의 자연도태에 의해 가차 없이 제거된다.

신경학자 노만 도이지(Norman Doidge)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우리가 정신적 능력의 활용을 멈춘다면, 그 능력을 그냥 망각하는 게 아니다. 두뇌 안에 그러한 능력을 위해 배정된 공간이 다른 기능에 넘어가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이를 더 명료하게 표현했다. “우리의 뉴런과 시냅스는 생각의 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뇌에 내재된 유연성 때문에 지적인 쇠퇴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몇 시간씩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SNS나 메신저를 하느라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 또는 트럼프 행정부가 2월 7일, 중거리핵전력 (INF) 조약 탈퇴를 결정한 후 따르는 군비경쟁의 리스크를 판단할 능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재앙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문데다가 종말을 불러올 이런 문제들을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니콜라스 카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 심리학, 신경생리학, 교육학, 그리고 웹 디자인 연구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글을 훑어 읽고, 서둘러 여러 생각을 하며, 피상적인 학습을 장려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책을 읽으면서 가볍게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 다만 이를 기술이 독려하거나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뉴런의 빠른 자극을 위한 정보 프로세싱 때문에 인류 전체가 “피상적” 사고에 사로잡히는 경우,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거나 옹호하기는커녕, 그 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이코패스 뒤의 사이코패스

아직 퍼즐 한 조각이 남았다. 현재의 상황이 모두 인류애 따위는 없는 탐욕스러운 부자 몇 명의 책임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이들의 가면을 벗기고, 장막 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술이 모든 제도를 대체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우리를 파멸로 몰고 온 이 부자들을 위해 판을 깔아준 궁극의 사이코패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 세계의 슈퍼컴퓨터 수만 대다. 매일, 매 분, 매 초마다 이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소수점 아래 열 번째 자리까지 계산해내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이 슈퍼컴퓨터가 JPMorgan Chase, Goldman Sachs, Barclays, Bank of America의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들 컴퓨터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즉 윤리적 거리낌 없이 지구 전체의 금전적 가치를 평가하고 철저히 알고리즘에 기초하여 이윤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뒤를 버티고 있는 이 슈퍼컴퓨터들에게 빌 게이츠(Bill Gates)와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즉각적인 궁극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서 만나는 재미없는 부록 같은 것이다.

슈퍼컴퓨터가 마침내 인간 문명을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당장 컴퓨터에 생태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인간성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이윤만을 근거로 사회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그만이다. 눈, 비디오, 게임 등이 인간 두뇌의 신경 네트워크를 재구성해서 도파민에 의한 단기적 사고만을 장려하더라도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면 그만이다. 슈퍼컴퓨터가 스스로 의식을 갖기 한참 전에 인간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직 완전히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불편한 일들을 많이도 슈퍼컴퓨터에게 맡기고 있다. 다중병렬 슈퍼컴퓨터라는 눈먼 자들이 인류라는 애꾸눈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한반도 변화” 프레시안

프레시안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한반도 변화”

2019년 4월 6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지난해 12월에 일본 오사카에 있는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와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는데, 고립된 채 유지보수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학교 건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폐쇄하라며 지역 사회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 내 조선학교는 다른 국제학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심스럽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1990년대 도쿄대학교에서 공부했을 때 동료들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일본 사회의 엘리트였으며 우정을 바탕으로 소수 공동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당시 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동료들에게 감동했다. 내가 일본의 강력한 의사 결정 커뮤니티에 들어간 미국인이 된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은 조선학교에 대해 아주 낯선, 전체주의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조선학교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평범한 일본인과의 교류를 거부한다고 했다. 일본인들 눈에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이데올로기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비밀스럽고 기이한, 마치 북한 음모의 한 부분처럼 묘사되었다. 

이후 조선 고등학교에 다닌 사람을 만나 그들이 일본에서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겪은 끔찍한 차별에 대해 알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東大阪 朝鮮中級学校 (2018年 12月)
 

Ⅱ. 
나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12년 이상 살고 있다. 도쿄대에서 공부했던 시절과는 다른 시각으로, 조선학교를 찾은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에는 능숙하지만 일본어는 그렇지 못한 딸 레이첼과 같이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우리가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쿄대의 오래된 기숙사가 생각났다. 1987년 당시 도쿄대 기숙사는 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려 깊고 창의적인 학생들로 가득했다(비록 지금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 역시 제대로 수리되어 있지 않았다. 건물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졌으며, 내부 콘크리트는 갈라져 있었다. 학교는 조선인 교육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우익세력에 의해 정부의 지원이 중단된 채 학교 학생들과 가족들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지키고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투쟁 의지는 강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도 조선학교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한국인을 적대시하는 우익세력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일본 내 조선학교의 투쟁 의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과외 활동에 집중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몇 시간에 걸쳐 축구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전통 한국 무용과 한국 음악을 연습하는 등 자신들의 활동에 몰입했다. 

Ⅲ. 
나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에 엄청난 교감을 느꼈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교만의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는 상업적인 시설이 전혀 없었다. 어디에도 광고가 없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는 상업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도 아니었다. 화장을 하거나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학생도 없었다. 학교의 장식물은 오롯이 학생들이 활동의 일부로 직접 만든 것이었다.

학교는 협동을 통해 운영되는 소규모 공동체였다. 그것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헌신적인 몇몇 사람에 의해 한국 문화가 보존되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1987년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봤던 문화가 그대로 느껴졌다. 이에 지난 30년 동안 과도하게 상업화된 소비문화로 사라진 것을 조선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12명의 중학생들과 마주 앉아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고, 일본 사회가 조선학교와 학생들에게 적대적인 압력을 가할 때 대응 방법 및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학생들은 비교적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말했다. 

학교의 기본 주제는 협력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팀의 일원으로 협력하는 곳이었다. 이런 태도는 개인을 파괴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나르시스트적 소비문화에 의한 인간성 파괴를 감안할 때 그들의 문화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한국어로 대화했다. 레이첼은 그들과 점심을 먹은 뒤 오사카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오사카 시내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레이첼은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배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것처럼 보였다. 

Ⅳ.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다. 김찬욱 교장과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그의 딸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아버지와 딸은 지역사회에 기반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일 양국의 대안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지금까지 학교가 어떤 압력을 견디며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와 레이첼은 우리를 위해 다코야키를 만들어온 15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앉았는데, 레이첼은 나는 아랑곳없이 그들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나는 김 교장과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일본에서 한국어로 교육을 하고, 일본 및 전 세계에 걸친 제국주의와 식민 통치의 유산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데에 따르는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서 대화했다.  

김 교장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 및 경제 문제에 관한 공개 세미나 자료의 사본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선학교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면서 예술·음악·작문 등을 과외 활동이 아닌 필수 항목으로 교육하는 학습법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Ⅴ. 
몇 달 뒤, 내 친구 가와나카 요가 가와가나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여학생 3명, 남학생 1명 등 총 4명을 각각 A, B, C, D로 표시)을 인터뷰했다. 

학생들은 노래방과 프리쿠라를 좋아하는 여느 일본 학생들과 똑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라는 정체성과 ‘분단’이라는 현실을 이해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학교의 교육 방식과 일본에서의 생활 방식이 나름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 내용을 전한다. 

– 조선반도(한반도)에 통일과 평화의 징조가 보이는데, 학생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나

학생 A : 북남 수뇌회담이 진행되었을 때 이야기지요? 역사를 배우는 사람으로, 기쁜 일이지만 ‘겨우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학생 B : 우리가 조국을 방문할 땐 보통 중국을 경유해서 간다. 그런데 ‘만약 통일된다면 남한을 거쳐 평양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수업 중에 했다. 

학생 C : ‘조선(북한)은 사회주의이고 한국은 자본주의사회이니까, 통일되면 어떤 사회가 될까?’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학생 D : 우리 자신이 특별히 변한 것은 없지만, TV나 신문에서 ‘북조선, 북조선’ 하고 방송하던 게 눈에 띄게 적어졌다. 우리가 ‘통일의 한길로 걸음을 때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분위기다.  

– 일본 사람들이 조선을 더 많이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학생 A : 글쎄요. 직접 만나고 교류하면, 선입관이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인식 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내 여러 고등학교와 교류하고 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지막에는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는 조선을 잘 아는 조선 사람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람도 아닌 조선과 일본 중간에 있는 느낌이랄까? ‘조선인’이 맞지만, 스스로를 ‘조선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좀 복잡하다. 경우에 따라 ‘조선 사람’이라고 규정되는 건 어색할 때도 있다. 다만, 이런 배경을 정확히 알고 편견 없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해줬으면 한다. 

– 뉴스를 볼 때 어떤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나. 일본의 주요 미디어가 보도하는 내용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나 

학생 A : TV에서 정보를 얻는다.  

학생 B : ‘라인 뉴스'(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이 일본에서 제공하는 뉴스 서비스)에서도.

학생 C : 학교에 있는 조선(북한) 쪽 신문도 본다. 

– 다들 근처에서 사는지. 조선 학교와 지역 주민 간 교류도 궁금하다 

학생 A, B, C, D : 대부분 전차를 타고 통하교를 한다. 다소 먼 거리다. 

– 그렇다면 지역 주민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 

학생 D :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선전 포스터를 전달한다.

학생 A : 평상시에는 학교 앞 긴 계단길을 정기적으로 청소하며, 지역 주민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 우익 단체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일본 사람 중에도 재일교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경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 A : 우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작된 정보가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과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다.  

– 일본에서의 생활, 만족하나? 노래방이나 프리쿠라(‘Print Club’의 일본식 발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좋아하나?  

학생 C : 좋다.  

학생 A, B : 일본의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들과 같다. 만족한다.

“통일 (統一)에 대한 소고 (小考)” 다른 백년

다른 백년

“통일 (統一)에 대한 소고 (小考)”

2019년 2월 1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북한의 미래에 관한 논의는 대북 협력 확대를 통한 투자와 비즈니스, 교통망, 전력망, 에너지 협력 등의 증대를 꾀하는 이들과 북한은 아직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선진국들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국경의 개방을 수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국가이므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느끼는 이들 간의 싸움으로 비화했다.

지난 해 내내 언론은 이렇게 지극히 단편적인 이야기만 해댔다. 미디어에 드러나는 것 너머의 시사를 통찰하는 시민 토론이 거의 붕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런 미디어의 전략이 꽤 효과적일 수 있었다.

더 이상 한국에서 1970년대 또는 1980년대 인사동 찻집에 모여 금서를 논하던 반대파와 학생들을 찾을 수 없다. NGO 모임의 정기적인 토론은 물론, 가정에서 저녁을 먹으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또는 찻집에서, 정책, 환경 또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던 모습마저 사라졌다. 휴대전화를 통해 유쾌하고 무해한 정보를 수동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수동적 인구의 일상이 되었다.

언론이 특정 정책을 “진보”로 또는 “보수”로 규정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론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한다. 프린스턴 대학교 셸던 월린(Sheldon Wolin) 교수가 언급한 “전도된 전체주의(inverted totalitarianism)”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도된 전체주의란 상업매체나 광고주의 압력 등 숨겨진 힘에 의해 일상적인 이슈에 대한 담론이 심각하게 제한되는 정치적 상황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독재자 없이도 전체주의적 시스템이 자리잡도록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권력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풍토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10분 이상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기업 미디어는 정보 획득의 장이 되었고, 소셜 미디어는 고양이와 디저트 사진을 보여주거나 이따금씩 기업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선보일 뿐이다.

한국 사회가 공동의 문제에 대한 담론을 잃었다는 것은 우리 미디어가 지역경제의 붕괴, 외국계 투자은행의 과도한 영향력,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미세먼지의 재앙, 미국 내 일부 세력이 꿈꾸는 세계대전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제한된 국내의 담론은 남북관계의 발전이 어떻게 비춰지고, 통일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통일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예컨대,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포옹하는 사진들을 잔뜩 보여주면, 남북이 DMZ 양측에서 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협력했다는 소식, 평양의 번듯한 빌딩이 등장하는 장면 등이 긍정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내용 자체는 모두 긍정적이다. 다만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세계와 단절, 폐쇄된 봉건-사회주의 국가에 살아야 했던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소비사회의 기쁨을 누리고, 훨씬 부유한 남한의 형제자매들처럼 즐기며 살 수 있게 될 것임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낙원은 아니다. 한국은 상당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힘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깊은 소외감을 느끼고, 이는 높은 자살율, 일상적인 자기학대와 타인학대를 초래하고 있다. 탐욕스러운 고용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어렵사리 일을 찾는다 해도 사회에 봉사하고, 고급 훈련을 받거나 진정한 인생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는 커녕 커피숍이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삶의 모든 측면이 이윤을 쫓는 쇼로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이에 지쳐버렸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빈곤과 고립에서 구원하기 위해 제시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전세계적으로 힘을 잃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한국, 유럽에서 1930년대와 1940년대 사회주의의 도전에 맞서 진화한 수정 자본주의는 더욱 탐욕적인 형태로, 1990년대보다는 1890년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후퇴했다. 프랑스의 갈등을 참고하면 이러한 모순이 더욱 뚜렷해, 한국과 다른 나라가 겪게 될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선진 경제”에서 시장은 단조로운 역할만을 하고 있다. 슈퍼 리치 계층은 경제활동을 독점하고, 해당 계층 구성원이라면 얼마든지 돈을 빌리고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봉건주의를 확립했다. 반면,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극도로 제한된 고금리 대출만이 허용될 뿐이다. 언론은 이렇게 민간 은행과 자본이 악몽 같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을 다루지 않고, 정책 결정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도 모호하다.

언론이 북한에 도입될 거대한 시장경제를 이야기하는 바로 그 순간, 시장경제는 정작 한국, 프랑스 또는 미국에서 소멸하고 있다. 피터 필립스(Peter Phillip)가 숙고의 연구를 통해 펴낸 저서 “자이언트, 세계 권력의 핵심(Giants: The Global Power Elite)”에서 묘사하는 바와 같이, 슈퍼 리치 계층과 그 조력자들은 이제 서로의 주식을 매입하고, 저금리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그들 만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에 반해 평범한 사람들은 줄어드는 저임금 일자리라도 잡기 위해 잔혹한 경쟁을 계속해야 한다. 이 착취형 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글로벌 기관 투자자의 뜻이 아니라, 그저 하늘의 뜻에 따라) 기술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가 크게 손상될 것이라 전해진다.

그렇다면 언론이 이렇게 저돌적으로 대북 포용과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보도하는 이면에 은밀히 숨기고 있는 이슈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리는 누가 무엇에, 왜 돈을 대며, 그로 인해 누가 어떤 이득을 보는 지 등 지저분한 뒷얘기는 하나도 듣지 못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철도가 놓인다면, 북한에서 남한까지 석유 또는 천연가스 수송관이 연결된다면, 그 수송관과 그 석유는 누구 소유인지, 석유를 어떻게 팔 것이며 그 수익금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 수송관을 설치하기 위해 세금이 쓰이는 경우 납세자들도 그 수익금을 일정 부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등을 우리가 아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들이 어떤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지 또는 정부가 북한과 어떤 협상을 진행 중인지에 대해 그야말로 무지하다. 지금 이 시기에는 투명성이 특히 더 중요하다. 광산이나 공장이 정부에 속하는 정부주도형 시스템이 일개 회사 또는 개인이 광산 등 자원에 대한 절대적 통제력을 가지는 자본주도형 시스템으로 변하는 경우에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한과 북한에 더 큰 빈곤, 더 큰 부의 집중을 불러올 수 있다.

어떤 다국적은행, 어떤 국부 펀드가 어떤 조건 하에서 북한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는지 아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투자자들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때 북한 또는 남한 주민들을 보호할 장치는 무엇인지, 서명된 (또는 서명할) 계약서를 대중에 공개할 것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북한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 있다면 다음의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누가 그 공장에 돈을 대는가? 수익금은 누구에게 가는가? 누가 그 공장을 소유하는가? 그 공장의 노동자들이 가지는 권리는 무엇이며, 이들은 수익금 중 어느 정도를 받게 되는가? 이들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환경에 미치는 공장의 영향력 평가를 위해 어떤 단계들을 수행하는가?

북한은 석탄, 금, 철, 희귀 광물을 채굴하는 광산의 환경 영향성을 평가할 전문지식이 없으므로 전문가와 NGO가 이러한 평가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기구들은 북한 방문 비자 조차 받을 수 없다.

한편,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은 베트남이나 미얀마에서 일어난 일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앞으로 북한도 베트남, 미얀마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기업이 베트남의 국유화 자산을 개발하였을 때 평범한 베트남인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번영하고 있다고만 들었는데, 이것은 정확한 설명인가? 그리고 산업화가 베트남의 환경이나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는 보통 싸게 사서 입고 버리는 옷, 쉽게 소비하는 저렴한 플라스틱, 대수롭지 않게 쓰레기통에 처박는 값싼 스마트폰, 스피커, 선글라스 등에 숨겨진 환경 훼손, 노동자의 피해, 또는 그 밖의 장기적 비용에 대한 토론은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 소비사회 안에서 물건에 숨겨진 진짜 비용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됐다. 이것이야 말로 통일시대의 심각한 문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을 통해 잊혔던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 20~30개의 석탄 발전소를 건립하면, 이는 생태계의 재앙인 동시에 지구 온난화를 부추길 것이며, 이미 위험한 서울의 대기질을 치명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말 것이다. 북한이 이윤을 쫓느라 새로 지어지는 공장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 경우, 한국은 그러한 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한국 공장들도 북한의 선례를 따를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형편없는 임금과 허술한 환경 보호는 이미 대기오염으로 신음하는 한국 속으로 빠르게 퍼져 나갈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북한 노동자들이 단결권 등 노동자의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이 모델을 따라 한국 내 근로자들을 착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면 한국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고, 부유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빠졌다. 하지만 현재의 개발 모델에서는 한국인들조차 자유와 행복과 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아니면 현재 투자은행과 기업이 구상 중인 북한 경제개발계획은 애초에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북한을 대상으로도 몽고나 베트남 개발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저 수익성을 생각할 뿐, 사람에 대한 고려는 없는 계획을 구상 중인지도 모르겠다.

부의 집중화는 통일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 중, 기후변화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전세계적으로 소수의 몇 명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집중화는 법치를 훼손하고, 부패한 미디어의 포장 속에 슈퍼 리치의 사치, 낭비, 화려함을 동경하고 강요하는 문화를 창조한다.

주류 언론의 논조에 따르면, 북한은 가난하고, 남북한 경제에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한다. 일반적인 경제용어를 바탕으로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 정착한 북한 사람들 중에는 이 곳 생활의 자기중심성, 경쟁,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상업화와 경쟁하는 문화 대신, 예술과 체조, 글쓰기의 목적 자체를 소중히 하는 문화에 큰 감동을 느낀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설명했듯이, 소수의 손아귀에 더 많은 부가 집중되게 되면 한반도의 분단은 못 먹고 못 사는 북한과 잘 먹고 잘 사는 남한 사이의 분단이 아니라, 남북한의 평범한 시민은 더 가난해지고, 극소수의 선택 받은 자들만 슈퍼 리치가 되는 분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남한과 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격차를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부의 집중으로 인한 경제적 왜곡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런 추세들은 한반도는 이제 매우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며, 현 상황에서는 북한에서 한강의 기적”을 재현할 가능성은 없음을 시사한다. 앞으로는 물질적인 발전보다 사회 경제적 정의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노력은 경제 체계가 보통 사람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반드시 의미 있는 응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체계에서는 전세계 무역항로를 따라 저렴한 물품 운송 시스템이 장려되고, 지역경제가 흔들리며, 오직 대기업만이 합리적인 금융을 누릴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개방 경제의 실패로 동네 가게, 동네 공장, 동네 약국, 동네 빵집이 무너진 반면, 스타벅스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빵집, 그 밖에 대기업이 진출한 사업들이 번성했다. 대기업들은 값싼 금융을 이용해 수년간 엄청난 손실을 감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가족이 경영하는 소규모 비즈니스를 몰아낸다.

그런데 이러한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장기 고용이나 적절한 퇴직과 건강보험 혜택을 보장받지 못한다. 직원들은 경영과 금융에 대한 의사결정에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고, 일하고 있는 지점을 소유할 권리도 없다.

한때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파산의 위기에 몰리는 소규모 가게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이런 경제학을 북한에 도입할 작정이라면, 북한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거절해야 한다. 북한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국 20년 뒤 또는 50년 뒤 국가로서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이지, 당장 비디오게임이나 K-Pop 아이돌을 소개해 주민들을 열광시키는 게 아니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통일의 궁극적인 의미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모호하고 오해의 여지가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통일을 1990년 독일의 통일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외국인들과 소주 한잔 하며 수다라도 떠는 날엔 이 꿈 같은 비교가 단골손님이다. 언제나 동독은 서독의 경제발전을 따라갈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고, 통일 후 동독 사람들의 삶이 좋아졌으며, 그 결과 독일은 더욱 번영하는 강대국이 되었다는 게 그 줄거리다. 한국도 독일처럼 통일의 이점을 누릴 수 있지만, 서독과 동독은 한국과 북한만큼 소득과 산업개발의 격차가 크지 않았던 바, 한국의 통일은 더 오랜 시간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의 소득 및 산업개발 격차는 긴 통일의 과정 중에 북한의 노동자를 싼 값에 착취하는 한국기업 및 다국적기업의 변명으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가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전문 기술을 축적하거나 임금을 저축하지 못한다면, 해당 과정은 북한 주민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보다는 모든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북한 노동자가 적은 월급을 벌어 패스트푸드나 휴대전화에 낭비하게 된다면, 이들의 삶은 더 나빠질 뿐이다.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지난 수십년간 상대적 경제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강의 기적”, 그 중에서도 “기적”이라는 말에 가려져 있다. 한국의 번영은 여러 모순의 종합이지만 기적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부분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급격한 산업화계획의 결과였다. 돌이켜보면, 그 급격한 산업화로 한국은 화석 연료와 수입 농산물에 너무 의존하게 되었고 산업화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다만 그의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는 점 하나는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 개발 모델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모든 시민이 마치 거대한 군대의 일부인 듯 국가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산업화로 갈 수 있었던 비결은 외국계 은행과 대기업에서 자본의 통제권을 빼앗아, 정부의 장기 개발 모델 이념에 열정적인 일부 관료들이 그러한 통제권을 갖도록 한 것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국민들의 해외 공금을 전면 제한했고, 국민들이 저축을 통해 (정부 캠페인에서는 저축을 장려) 정부주도 저축계획에 동참, 개발에 자금을 대도록 했다.

또한 한국으로 유입되는 자본을 정부가 통제하여 산업 및 기술의 육성, 기반 시설 개발, 교육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 북한에 계획되고 있는 형태의 단기적 투기 목적에는 사용되기 어렵다.

박정희의 접근방식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북한의 발전을 위해 그러한 모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북한의 교육수준이 올라갈 것인지, 또는 어떻게 북한의 시민사회를 육성할 것인지, 녹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북한의 차세대 지식층을 키워낼 필요에 대해 일언반구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식인들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니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대기업들이 북한의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이해의 상충이다. 결국 이 대기업들은 태생적으로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하고, 북한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북한의 개발에 대한 논의는 이해의 상충이 없고, 윤리적인 거버넌스에 전념할 수 있는 정부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제한하는 것이 옳다.

그럼 다시 1990년 독일의 통일로 돌아가보자. 상당히 오래 전, 상당히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서유럽의 경제체제와 산업생산은 훨씬 더 넓은 부의 분배를 지지했다. 노조와 정부의 규제로 오늘날 우리가 (국내외에서) 목격하는 노동자의 착취는 불가능했다. 공산권을 의식하여 경제체제를 견제했고, 부의 집중이 최근처럼 과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승리로 떠들썩했던 1990년 독일의 통일은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대비, 제대로 된 사회복지국가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급진적 또는 혁명적 사회주의에 전념하는 반대파의 끊임없는 압력과 비판이 없었다면, 독일에서 (또는 프랑스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그런 사회복지국가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1990년 승리한 자본주의는 수정된, 희석된 자본주의였다. 공산권의 도전이 없어진다는 것은 앞으로 30년간 세상이 파괴적인 형태로 회귀할 것임을 의미했다

소수가 자본을 독점하고 시민들에게 공허한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이 악몽 같은 세상과 급작스러운 기후변화의 등장은 무관하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은 소극적이나마 기후변화를 보도하면서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했다. 과학전문가들은 남은 시간이 없다고 외치는 와중에도 말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통일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은 북한이 환경문제 없이 수십년은 개발을 지속할 수 있다고 태평스러운 가정을 하고 있다. 이 자체로도 위험한 사기행각이지만,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석탄 사용을 장려하는 것보다는 낫다.

분단의 한반도, 특히 북한이 냉전의 마지막 잔재라는 것 역시 근거 없는 믿음 중 하나다. 북한은 정말 자유로운 개방시장, 자유로운 의견 교환, 민주적인 과정을 통한 개인의 잠재력 실현 등 새로운 세계 질서 곁을 방황하는 한물간 사회주의의 잔재인가? 오늘날 파리의 길 위에서 정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세상을 그렇게 보지 않는 게 확실하다.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농부들을 가난으로 몰아넣는 거대 기업형 농업과 싸우는 사람들은 서구세계에서 파라다이스를 찾지 못했다. 물론 북한이 부패의 늪에 빠져 주민들을 억압하며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싱크탱크를 통해 정부에 정책을 강요하는 무자비한 다국적 은행들로부터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한반도의 비극적인 분단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상징인 비무장지대, 즉 DMZ를 생각해 보라.

나이든 세대에게 DMZ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세계, 국가의 경제 통제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 간의 가슴 아픈 분열을 뜻한다.

그들에게 DMZ는 유럽 등지에서 이미 극복한 개인의 고통과 과거의 분열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DMZ는 인터넷과 함께 국경이 사라지는 시대, 자유 무역과 자유 관광의 시대, 지난 30년간 자유 무역이 세계의 통합한 지금에도 기묘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보다 효과적으로 DMZ를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DMZ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까?

젊은 세대에게 DMZ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들은 DMZ를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 다시 말해 자본과 상품, 슈퍼 리치는 어디든 돈이 되는 곳이면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이동은 제한되는 미래의 전조라 할 지 모른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둘러쌓고 있는 장벽에서,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가 건설 중인 거대한 장벽에서 DMZ의 후예들을 만난다. 이들 벽은 가난한 자들을 차단하고, 무력을 사용해 글로벌 투자가 야기한 경제적 갈등을 해결한다.

바로 우리 주변에도 벽이 쌓이는 중이다. 부자만의 세상을 둘러싼 벽, 안락한 삶을 즐기는 그들이 자신과 급이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쌓는 벽이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곳의 급진적 분열이 편협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작은 집단들로 세분화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드러나지 않은 통일정책의 선례

통일 프로젝트를 더욱 면밀히 보기 위해서는 통일계획을 수립 중인 한국정부와 기업들의 잠재의식 속에 정확히 어떤 통일 모델이 자리잡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그들은 독일 통일을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독일의 통일 과정은 한반도의 역사나 한국인의 본능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과거에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통일을 이룬 바 있다. 한반도는 신라나 고려시대에도 통일되었지만, 시간상 너무나 먼 과거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마음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영향력은 없다 해도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것, 한국인들이 경제 발전과 통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 그것은 무엇인가?

비교적 최근에도 대규모 경제, 정치적 통일 프로젝트의 선례가 있었다. 1936년 일본인 조선총독에 의해 체결된 “제1차 만주-조선 협력협정 (第一次滿朝協定)” 이다. 해당 협정은 만주와 조선 모두의 빠른 산업화와 효과적인 경제문화적 통일을 위해 “만주와 조선은 하나(滿朝一如)”라는 비전에 시동을 걸었다.

1930년대 후반,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 기업들은 값싼 만주 노동력을 활용하고, 만주의 천연자원(석탄, 광물, 비옥한 토양)을 이용해 빠르게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고 보도하기 바빴다.

2014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북한과의 통일은 “대박(bonanza)”이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사용한 대박이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 말은 1930년대 만주가 제공한 경제적 기회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썼던 “천금을 낚아챈다”, 즉 일확천금(一攫千金)의 표현을 현대식으로 직역한 것이다.

박대통령이 1930년대 조선과 만주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과 만주가 통합된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조선의 가정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부를 얻었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울림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무의식 속에 그런 개념이 내재되어 있었던 듯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와 경제를 배웠고, 아버지가 야심 찬 젊은이로서 경제 붐을 이용하고자 만주로 가 권력을 얻기 까지를 주목한 것이다. 19세기 수많은 미국인들이 “Go West” 라는 치명적 유혹에 홀렸던 것처럼, 1930년대의 한국인들도 1930년대 만주라는 넓은 땅으로 달려갔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북한의 개발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그리고 1930년대 만주의 개발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는지를 보면, 그 유사함이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비극적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길을 찾고, 착취나 대규모 자본투자에 의존하지 않고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개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통일은 반드시 시민운동이어야 한다. 자본가가 가져갈 수익을 걱정하지 않고 개인들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거래여야 한다. 통일은 시민들이 비전을 나누고, 실현할 수 있도록 문화와 표현을 되살리는 문화운동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힘을 모으고, 자신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청년 운동이어야 한다.

통일은 사회 문제, 환경 문제, 그 밖에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에 집중하는 동시에, 군국주의와 거대한 권력 경쟁에서 벗어난 평화운동이어야 한다.

“통일대박론, 일제 만주국 개발 방식…약탈적 경협을 넘어야” 경향신문 인터뷰

경향신문

인터뷰

“통일대박론, 일제 만주국 개발 방식…약탈적 경협을 넘어야”

2019년 1월 16일

이만열 이사장의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

“북한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담론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또다른 통일대박론에 불과합니다. 경협의 이익은 남북 시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언어문화학 박사 출신으로 한국의 ‘선비정신’에 주목한 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55·미국명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2017년 한국 국적까지 취득한 그가 최근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경향신문과 만나 “북한의 풍부한 광물 자원,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빠른 부를 창출하려는 ‘약탈적인 경협’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작 주민들이 아닌 외부 투자자들의 배만 불리는 방식으로 북한 개혁·개방이 이뤄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통일대박론의 뿌리를 일제의 만주국 개발에서 찾았다. 그는 “통일대박론은 당시 한국 부자들이 만주에 투자해 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석탄 등 자원을 개발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만주개발론과 같은 맥락에 있다”며 “이에 ‘한반도 신경제’나 ‘동북아 경제공동체’ 주장은 이런 대박론부터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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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 북한 발전 계획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2007년 한국에 온 뒤 북한 이야기는 안 했다. 북한 전문가가 많은 데다 저는 지식도 없어 남한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자원개발, 값싼 노동력 활용 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담론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다른 목소리가 별로 없다고 느껴 내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북이 같이 발전소를 짓는다는 아이디어도 나오는데 신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를 염두에 두는 것 같아 실망했다.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안 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 한반도신경제구상, 통일경제특구, 동북아 철도공동체 등 논의는 어떻게 보나.

“1970~1980년대 독재 시절이었지만 작은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돈으로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대형마트와 경쟁해야 하는 등 20년 전에 비해 독립적 경제력이 많이 떨어졌다. 북한까지 남한식으로 개발하면 안 된다. 남한의 상황도 심각한데 남한 제도를 북한에 도입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남북경협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남북 시민사회 간 협력 방식으로 가야 한다.” 

– 북한도 개혁·개방을 할 때 중국·베트남 모델처럼 외자 유치가 필요하지 않나.

“부분적으로 해외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해외자본에 의지하는 것은 반대다. 1960년대 한국은 해외자본에 의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해외투자를 엄격하게 관리한 게 도움이 됐다. 단기적 이익만 고려하는 기업의 투자는 한계가 있다.” 

–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권구훈 골드만삭스 전무를 위촉했다.

“객관적으로 한반도 발전을 분석해야 하는데 골드만삭스에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언론에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많지 않아서 놀랐다. 남북경협의 청사진은 기업이 아니라 남한 시민, 전문가, 탈북자가 북한 시민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 

– 문재인 정부도 북한 개혁·개방 시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강조한다.

“박근혜식 통일대박론은 1935년 일제의 만주국하고 조선의 통일 정책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만주국하고 조선은 하나라는 ‘조만일여(朝滿一如)’를 강조하며 일본이 통일을 시키려고 했다. 당시 한국인 부자들이 만주에서 투자해 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석탄 등 자원을 개발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조선총독부에서 이를 발표하고 신문 기사에도 나오고 했다. 실제로 남한 부자들은 그 당시 만주에서 돈을 벌었다. 거기에서 공장도 운영하고 개발했다. 하지만 평범한 만주 사람들 삶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만주 사람들과 교류하고 더 나은 사회 만들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남북경협의 경우 조만일여식 논리에서 벗어나 북한사회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 통일대박론의 연원이 그렇다면 놀랍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이전에 박정희가 비밀리에 일본에서 기시 노부스케 등을 만나 ‘우리가 만주에선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남한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 많이 도와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노부스케도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반가워했다. 실제로 박정희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만주국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민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는 만주개발론은 통일대박론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인 노부스케는 만주국에서 산업개발을 추진하고 A급 전범이지만 전후에 무죄로 풀려난 뒤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 문재인 정부가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얻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조만일여, 통일대박론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빈곤한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대신 국제 투자자들이 혜택을 보는 ‘약탈 경제’ 계획이 지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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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 최근 탈북자들과 세미나도 했다고 들었다.

“독일이 통일될 때 문제가 적지 않았다. 동독에서 공동체, 공동농업, 예술활동이 많았지만 통일 이후 다 사라졌다고 한다. 동독에서 서독과 다른 패러다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사라진 것이다. 탈북자들도 공동체적 활동이 없어지고 모든 게 수익 위주로만 되는 사회라면 문제라고 했다.”

– 북한이 가야 할 제3의 길, 대안적 발전 모델은 무엇인가.

“지금 남한이 생각하는 경제는 일본식의 경제다. 성장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게 많다. 원래 경제란 표현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유교사상에서 나온 게 아닌가. 돈을 좇기보다 윤리적 원칙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시민을 살리자는 의미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경제 분야에서 잘 해 성과를 내고 기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제3의 길은 협력적인 경제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고유의 경제 공동체 의식과 마을 중심의 나눔 전통을 살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커먼스(Commons·공동체의 규칙에 따라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관리하는 것) 사상을 수용하면 된다.”

– 남북 협력도 이런 방식으로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토론하면 충분히 제3의 협력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대북 제재는 어떻게 보면 북한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고민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것이다. 남한 정치인, 경제인은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에 가기도 하는데 다른 협력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가지 못한다. 또 일본, 미국, 중국, 남한의 자본은 철도·도로 등 인프라, 자원 개발 등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 내용이 뭔지, 맞는 방향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 올해 상반기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에 대한 책을 낸다고 들었다.

“올해 3월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35년 만주 상황과 현재 상황을 비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지점이 빈부격차 문제다. 남북 모두 일반 시민들과 부자들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1980년대 남부의 보수적인 주에선 노조를 말살하는 법률이 있었다. 이 법률의 최종 목표는 남부가 아니라 북부였다. 이것과 비슷하게 북한에 적용한 나쁜 정책을 남한에서 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증거는 없지만 남한 기업들은 북한에 투자할 때 남한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낮으니 남한의 최저임금도 내리자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의 잘못된 개발이 남한 시민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