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Institute and Extinction Rebellion will join forces to launch a “Protest against Climate Catastrophe” on Sunday, May 5, 12-4 PM @ Gwanghwamun in downtown Seoul. Please meet to start at the statue of King Sejong.
Also, if you can make a contribution to cover the costs of placards and stickers, it will be greatly appreciated.
for more information, contact Emanuel @ 010 3444 1598.
We cannot fix the government through policy or by elections. We cannot fix the government by putting in a few ethical people here and there. And we cannot fix government by getting rid of government. Government will always exist in some form or another. To say there is no government is to let it be run by gangsters, or by for-profit organizations which are the equivalent of gangsters.
The only way to improve the government is by creating self-sufficient communities that are run so effectively and so ethically that they become a model for what government can become. When we do that, then government will stop benchmarking corporations and their ruthless efficiency and go back to benchmarking communities their supportive, participatory processes.
罗杰·哈勒姆:首先我想郑重声明,在我组织反抗灭绝的过程中,有许多人伸出了援助之手。我在他们的帮助下,于去年一月为崛起网(Rising Up Network)撰写了一篇题为“面对真正的问题”(Pivoting to the Real Issue)的文章;该网站是专供发起、参与反抗灭绝的活动家、学者和研究人员开展深入思考、探讨如何应对当前严峻形势的平台。
The
journalism surrounding the attack on Labour leader Jeremy Corbyn displays all the signs of deep criminality. The media suggests
that Corbyn was “egged,” harmlessly struck with an egg in good fun. In fact,
eye witnesses affirm that he was brutally struck with the intention of inflicting physical
injury. The egg was just a special topping. One can’t help but think that the
“egg effect” was planned by those who orchestrated the assault for the very
purpose of creating such a false and confusing narrative.
The message to thoughtful politicians and officials is clear: “you will not even get accurate reporting about how you were attacked. The war on the opposition will be carried out by stealthy means and Corbyn and his like should just shut up or disappear.” What should have been a historic moment that brought out mass demonstrations and an affirmation of the need to protect thoughtful politicians from attack has been normalized and ignored, treated like a minor event barely worthy of notice. We can easily imagine what the next step in this process of normalization will be.
Oh, and
another thing. The massive campaign to convince you that renewal energy is
impossible and costs more than a system that will lead to mass extinction is
not just about keeping up the revenues from fossil fuels. It is also about
keeping the people from having to create energy on their own. If people start
to farm and to generate energy on their own, they will no longer depend on
corporations. That must be stopped at any cost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가 되자 일반 가정에서는 아직 생소했던 인터넷이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아직 전화회선으로 거액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한정된 시간에 인터넷을 사용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독일에서 알게 된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독일의 슈퍼에서 사온 딱딱한 두부를 요리해서 둘이서 먹었다. 독일인 지인은 “두부는 인터넷 같다. 처음에는 볼 수도 없었고 먹어 볼 기회도 없었는데 지금은 없는 곳이 없어 모두가 두부를 먹는다” 며 인터넷과 두부가 사회에 침투하는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스마트폰의 보급도 그것과 비슷할지 모르겠으나, 정보화 사회라는 것은 실로 무서운 것이어서 편리함의 중독에 빠져 있는 사이에 어느 편향된 이데올로기에 물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의 조선민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닐는지.
나도 아무런 악의 없이 단지 흥미위주로 성범죄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던 중에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기사에 ‘범인은 재일교포’ ‘한국과 북한은 성범죄대국’이라는 문자가 난무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가벼운 생각과 무지가 얼마만큼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한국인)들은 괴롭히고 한반도 사람들을 멸시하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유럽 등 서양을 동경했고 실제로 프랑스에 체류한 적도 있지만, 한반도에 대해서는 이웃나라임에도 불구하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기회가 있어서 한국에 지인도 생기고 가끔씩 한국을 방문하면서 젊었을 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편향되고 무지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북한에는 가 본 적이 없지만 한국에 대해서만 말해보자면, 한국인은 일본인을 아주 오픈 마인드로 대해주고 일본인이 한반도를 통치했던 역사에 대해서도 이를 아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일본의 TV 뉴스에서 보도하는 한일 간의 여러 가지 문제가 실은 전쟁 비즈니스를 획책하는 일본 정부가 이를 선동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가와나카 씨도 조선학교에 가보세요”라는 한국에 사는 페스트리치 씨에게 권유를 받았을 때, “네”라고 짧게 대답은 했으나 전혀 모르는 타인인 내가 조선학교를 찾아가면 과연 학교 사람들이 나를 반겨주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문의 목적이 인터뷰로 정해졌을 때 지금까지 품어왔던 거리감 같은 것이 조금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나는 일본인이 갖고 있는 차별적 사고를 조금은 불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내가 방문했던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는 나라와 지자체로부터 차별을 받아 가나가와현 내의 외국인학교 가운데서 유일하게 수업료 무상화제도를 적용받지 못하고, 현은 이 학교를 포함해 다섯 개 학교에 다니는 아동•학생에 대한 학비보조를 2016년 이후 정지했다. 이에 대해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은 요코하마 시내의 모처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라와 자치단체에서 솔선해서 차별을 하고, 국민의 차별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관제 헤이트다.”라며 이를 비판했다.
내가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을 때 김찬욱(金燦旭)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넓은 교내를 구경시켜주며 wifi 배선 등도 졸업생과 학부형의 협력을 얻어 자신들이 직접 깔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높고도 넓은 천정에 저렇게 긴 배선을 깔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걸릴텐데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이것을 직접 해냈다.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에서는 특히 어학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데, 학생들은 모두 조선어, 일본어, 영어의 세 언어를 철저히 배운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각 언어의 검정시험의 자격보유를 목표로 하여 어려운 공부를 매일매일 거르지 않고 한다. 일본 학교가 도입하기도 전에 정보교육을 실시하고, 정보리터러시 등을 배워 스스로 정보를 발신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고 있는 것도 이 학교의 특징 중 하나라고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말했다. 그것은 이 학교에서 수행하는 여러 과제 중 일부인데, 무엇보다도 이 학교의 교육방침의 기본 베이스는 서로 돕는, 무언가를 잘하는 학생은 그렇지 못한 학생을 돕는, 상조(相助)의 정신을 기조로 한, 조선민족으로서의 마음과 자부심을 제대로 잘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학생들과의 잡담에서, “장래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라고 물으니 어떤 학생이 “이 조선학교를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수줍어하며 대답해 주었다. 이 이야기를 김찬욱 교장선생님에게 들려주자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학생이 학교 걱정을 하다니, 이런 건 원래 안 해도 되는 건데요…”라고 했다.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는 많은 학부형과 졸업생들의 도움에 의해 운영되기도 하고 있으니 학생들이 봤을 때 그건 당연하다고 의식하고 있는 걸까.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학생들의 의견은 김찬욱 교장선생님을 위시로 한 이 학교 선생님들의 교육 성과이기도 할 것이다. 거기에 조선민족의 상조 정신이 계승되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교내에서는 누구를 만나도 웃는 얼굴로 발랄하게 인사를 하고, 전철 안에서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살벌한 분위기는 이곳에서는 털끝만큼도 느낄 수가 없었다.
수업을 견학해보니 학생들은 지진재해에 대한 방비를 확실히 하자든지, 인사는 중요함으로 특히 손윗사람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든지 하는 주제를 자신들이 직접 정해 발표를 하고, 음악수업에서는 아카페라로 합창을 하며 서로 웃거나 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학교와는 조금 다르게 느낀 점은 발표 전에는 학생들이 다소 떠들거나 장난을 치더라도 선생님은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같이 웃으며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너그러움과 관대함을 느꼈다.
내가 재일조선인들을 차별하는 일본인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 때도 감정적인 발언이 아닌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그들의 사상을 분석하고 결코 비난하거나 하지 않는 태도는 김찬욱 교장선생님 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볼 수가 있어서 조금 놀랐다.
예를 들면 많은 일본인들이 종군위안부 문제라든지, 징용공의 문제라든지, 전쟁책임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왠지 우리들을 일방적으로 힐문(詰問)한다고 느끼는 건지, 이미 해결이 다 끝난 문제를 계속해서 반복해 문제시 삼는 조선민족은 질이 좋지 않다는 식의 감정적인 의견이 많다.
실제로 한국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속해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의 정치가가 계속해서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든지, 필요악이었다는 등의 실언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도 “한국 측 태도가 나쁘니 그런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정색을 하는 일본인들도 꽤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한 학생이 “우리들은 사상이랄까, 우리들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도 제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갖고 서로 이야기를 한다면 편향된 정보에 현혹됨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말을 듣고 그야말로 우리들 일본인은 우리 자신들의 생각을 잊어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김찬욱 교장선생님은 여러 번 반복해서 무지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는데, 그것은 과거의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무지 –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만연케 하고 있는지. 예전의 나는 단순히 인터넷에 실려 있던 정보를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편향된 사고를 갖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안다’는 것의 중요함조차 ‘몰랐던’ 것이다.
10대 때도 병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서 내 가족이 내밀어준 손도 보지 못하고 가족에 대해 못된 짓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야말로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민족이 내민 손을 보지 못한 채 못된 짓을 계속하고 있는 구조와 겹쳐 보인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배려와 공정한 시선이라는 것은 실수를 거듭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완고해져버린 사람의 마음은 실패를 실패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김찬욱 교장선생님과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의 학생들은 차별을 받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일본인과 평소와 같이 마주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 ‘학교를 열린 장으로 해서 많은 일본인이 찾아와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불만과 불안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안심하려 드는 사람들은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자기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받아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없다면 안정되게 서 있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자기들이 차별하는 상대인 재일조선인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그들은 차별을 용서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냉정하고 공정하게 대해줄 터이니.
학교를 떠날 때 “언제든지 또 오세요”라고 인사를 해준 김창욱 교장선생님과 밖에서 놀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또 인사를 해준 학생들을 보고 일본인들이 잃어가고 있는 마음을 그들이 ‘조선민족의 자부심’으로써 교육에 도입하여 끊임없이 계승하고 있음을 느꼈다.
따뜻한 그들을 만나보면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의 중단과 무상화제도에서 제외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모든 대응이 잘 짜여진 비지네스와 같은 차별의 실태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문 발표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은 필자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들 중 가장 복잡하고 모순된 사건들 중 하나였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가 결렬 직후 진행한 즉흥적인 기자회견은 전혀 복잡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미디어를 의식하여 짜낸 진부한 쇼였고, 변명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트럼프는 김정은,
신조
아베, 시진핑
그리고
문제인과
맺고
있는 “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런
모습은
갑작스런
방송사고
프로그램의
공백을
채우려
애쓰는
심야
프로그램
코미디언
같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던진
긍정적인
언어들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들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돌리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가졌던 “생산적인
시간”들에
대한
달콤한
말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직
상승중인
전쟁의
위험성을
가려주지
못
한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
해
보자. 세계평화의
차원에서
봤을
때
북한은
특출난
위협이라기보단,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으로
구축된
세계
질서가
붕괴되며
뒤따라
벌어진) 비교적
안정적인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압제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라는
사실은
특별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어떤가? 현재
미국
정부는
정부로서의
전문성을
모두
잃었고, 이슈와
정책에
대한
분석은
급격히
사유화되었으며, 부가
극도로
집중되며
문화
또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미국은
이제
고립주의와
군사주의로
빠져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제재완화에
대한
연방
의회의
강한
반발, 혹은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헨의
저속한
증언들로
인해, 하노이에서의
쇼는
어떤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트럼프를
기다려주지
않고
있다.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의
기로에
서
있으며, 이
두
나라가
대립하는
이유
중
작지
않은
부분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치게임에서
나오고
있다. 미군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중앙
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에
개입하고
있으며, 새로
선출된
연방의회는
거기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
같아
보인다.
남미에는
정치적
문제
해결에
강제력을
동원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이득을
위해서
분별없는
반지성주의
풍조를
부채질하고
아마존의
우림을
파괴하려
하는, 나아가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려
하는
브라질의
볼소나로
덕분에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시에
네오콘의
사상적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엇
에이브람스와
존
볼턴은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
그들은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국적
기업들을
위해
석유생산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역겨운
행동
중
하나는
우익
상원의원
중
하나인
마르코
루비오가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리비아의
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진을
올린
일이다. 이는
마두로가
계속
미국에
저항한다면
무아마르
카다피와
비슷하게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암시였다.
자원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음모는
석유와
석탄
재벌인
찰스
코흐와
앤디
코흐
형제가
이끌고
있다. 이들이
또한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듯한
북한의
금, 석탄
그리고
다른
지하자원들을
노리고
있다는
혐의의
기조에
큰
힘을
싣고
있다. 이는
김정은과의
회담에
있어서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경제적
기적이
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북한과의
접촉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적대적인
행동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이 INF(중거리
핵전력
협정) 협정에서
탈퇴하게
하려는
존
볼턴의
행동들은
발전한
기술
덕에 1950년대에
있었던
군비경쟁보다
훨씬
위험한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란핵협상의
일방적인
파기와
더불어서, 이런
광기가
독일, 러시아, 중국, 미국, 터키, 일본, 인도
그리고
이란
사이의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모든
나라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핵전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은
현재의
혼란한
정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찬에서
김정은이
지어
보였던
미소
뒤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노이 2차
회담은
양측이
모두
극심한
자기기만을
받아들이고자
했기에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했던
친절한
말들은
미
국방성이
중국과의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지
못한다. 트럼프와
주변인들이
제재를
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전쟁
위협을
협상
전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어떠한
문민통제도
없이
미군의
힘을
사이코패스들의
영향아래
둔다면
이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민주당의
반응
그리고
남한과
일본
보수층의
반응은
트럼프가
국제법을
무시하며
군사주의를
받아들이고
그의
파시스트적
기반에
영합하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비판들이었다. 미국이
모든
나라들이
핵
확산
금지
조약을
지키도록
하는데
실패하고
이란과의
핵협상도
파기되면서, 국방성은 1조
달러를
들여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명백한
조약
위반이지만
이에
대한
업급이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반지성주의의대두와미디어의부패
북미
정상화담의
뒤에
숨은
정치학적
의미는
간단하지
않았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지정학적
변화가
거대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부들이
기득권과
타협하고
사익에
스스로를
팔아
넘기면서
정치인들은
재벌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침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는
다국적
기업이나
투자은행들을
답습하여
이
세상을
소개하고
있다. 미디어
또한
또
하나의
사업이
되었고, 기업체들의
홍보부
역할을
맡고
있다. 세상의
현
상태에
대한
지성적인
탐구는
없고, 뉴스를
만드는
데
있어서
도덕적
문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많은
기사들은
혼란과
오해를
부추기기만
하고
있다.
회담에
대해
미디어가
제공한
자세한
사항이라고는
김정은이
하노이까지
어떻게
기차를
타고
왔는지, 호텔과
외교적
관례에
주요한
지점
주위의
통행이
어떻게
차단되었는지
밖에
없었다.
미디어는 죽었고
반지성주의의
커다란
파도가
미국을
휩쓸었으며, 많은
나라들은
더
이상
비판적
분석이
불가능한
지경이
이르렀다. 우리
세상에
어떤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은
트럼프뿐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임
게임, 포르노
혹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어
옹알거리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고, 더
이상
복잡한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퇴화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담의
끝에
던져졌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다음
회담이
언제
열릴까?” 가
아닌, “많은
단체나
기관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제를
토론하는
소통의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어떤
주제들이
다뤄지지
않았는가?
어떤
것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
중요한
주제인가?
세상의 부가
몇몇
사람들의
손에
급격히
집중되는
현실은
분명
트럼프나
김정은
누구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한반도를
사막화
시킬
수도
있는
기후
변화와
규제
없는
오염과
석탄
사용
증가로
인해
나빠지는
공기질
또한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과
점점
가속화되는
군비
경쟁
또한 (이
문제가
북한이
가진
불안정성의
중심적인
이유였음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그리고
남한의
군수업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꼭 1차
세계대전
직전처럼
무기와
전쟁
위협은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정상회담에
대한
초점은
북한이
핵무기를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금지조차
천명하지
않은
채
전쟁위협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이
가진
수천
개의
핵무기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또
한
차례의
정상회담이
자리한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시민들의 진정한 우려가 반영된 대화가 자리잡을 때 해결될 것이며, 국제 관계에서의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담은 담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이나 행정부의 변화가 아닌 문화 자체의 변화를 필요로 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