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on my work in Washington D.C. from the Busan Ilbo (in Korean)

Many people ask me about my work in Washington D.C., especially my role at the Editor-in-Chief of the on-line journal of the Foreign Ministry “Dynamic Korea” and as director of the innovative think tank KORUS House. I am writing a short essay on the topic now, but here is an article from the Busan Ilbo from 2007 that I think may be helpful. The author, Park Suk-ho, refers to me as the “Joseon Dynasty Confucian Scholar of Washington D.C.” I am honored.

“워싱턴의 조선 선비, 페스트라이시 박사”

워싱턴 DC에서 만난 여러 미국인들 가운데 필자의 머리 속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주미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에서 기획책임자(Chief Coordinator)로 일하고 있는 임마누엘 이 페스트라이시(Emanuel Yi Pastreich) 박사이다. 그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역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블로그 제목을 ‘워싱턴의 조선 선비’라고 붙였지만 그를 외모로만 보면 바짝 마른 몸매에 약간 매부리코, 시원하게 벗겨진 이마 등 선비의 냄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얘기를 나누다 보면 조선시대에 찬란하게 꽃피웠던 유교문화에 대한 애착과 고결한 선비정신에 대한 동경 등을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다.

선비문화에 빠진 삶

페스트라이시 박사는 서양인이지만 분명 동양 문화에 푹 젖은 삶을 살고 있다.

그것도 21세기가 아니라 유교 문화가 꽃을 피운 16-18세기의 동양 문화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그는 18세기 조선의 지성인 연암 박지원을 자신의 롤(Role) 모델로 생각할 정도로 유교 문화 시대의 선비와 같은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임마누엘 이 페스트라이시(Emanuel Yi Pastreich)

어떻게 이러한 조합이 가능할까.

궁금증에 빠진 기자는 그의 이력을 살펴보았다. 1964년생인 페스트라이시 박사는 유색인종이 드문 중부 테네시주와 미주리주에서 주로 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때 아버지를 따라 동부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갔고 그때부터 학교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 출신 학생들을 만나 친구로 사귀기 시작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시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예일대에 진학해서는 중국 문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1983년에 예일대에 들어가면서 중국이 미래에 중요한 국가로 부상할 것이라고 보고 많은 고전을 읽는 과정에서 유교의 사대부와 문인의 역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1985년에는 국립 대만대학교에서 중국 문학과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예일대로 돌아와 졸업한 뒤에는 일본 도쿄대로 옮겨가 비교 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후 다시 하버드대로 진학해 아시아 언어와 문명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에서는 95-96년 사이에 서울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중국과 한국 문학에관한 비교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페스트라이시 박사는 한국 유학 당시 17-18 세기의 조선사회, 특히 유학을 중심으로 한 선비사상과 정약용, 박지원으로 대표되는 조선후기 실학사상을 심도깊게 연구했다. 그는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과 허생전, 호질, 열녀함양박씨전 등 10여권의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조만간 출판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데 그 중에서 한국어가 가장 배우기 어려웠다고 한다.

예일대 출신으로 샌프란시스코 악단장을 지낸 유대인 아버지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룩셈부르크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도 잘 한다고 한다.

가족들과의 단란한 모습.

(페스트라이시 박사는 집안에서는 개량한복도 입고 신발을 벗고 생활할 정도로 한국적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유학중이던 1995년 한국인 이승은씨와 결혼을 했다. 그는 한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다가 국악을 전공한 이씨와 만나 결혼했으며 아들 벤저민 (5세)과 딸 레이철 (3세)이 있다. 그가 이씨와 결혼을 한 사실을 듣고서야 중간 이름으로 Yi를 사용하게 된 내력을 알게 됐다. 그는 이씨와 결혼후 그녀가 미국식으로 그의 성을 따른 대신 그는 이(Yi)씨 성을 중간 이름으로 사용했다. 아들 벤저민과 레이철에게도 각각 지민, 정민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전 가족의 중간 이름을 Yi로 통일했다.

한국 국악도와 결혼

페스트라이시 박사는 한국 문화원에서 미국의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 정부나 주미 대사관의 국문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 미국 언론 기관 등에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홍보원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토머스 허버드, 도널드 그렉 전 주한미대사 등 쟁쟁한 인물들이 강사로 나서 동아시아 정세나 한미관계 등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있어 워싱턴 지역 유학생들과 특파원들에게 인기있는 세미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미한국대사관 홍보원에서 매주 열리는 세미나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각별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을 뛰어넘고 있기도 하다.

독도문제에 관해 페스트라이시 박사가 쓴 글을 보면 그런 부분을 잘 알수 있다.

“한국이 독도 문제보다 더 중요한 남북통일 문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에 점점 젖어들고 있으며 한국이 모범을 보이면 일본은 민주주의와 공정성의 측면에서 한국 모델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일본의 일반 국민을 소원하게 만드는 것은 실수입니다. 한국은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 따른 위상 문제 등 중대한 현안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독도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북통일이라는 절박한 도전입니다. 독도 문제에 집착하다 보면 한국의 장기적인 목표에서 일탈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독도 문제 제기에 강력 대응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고, 한국의 정치인들이 식민지 경험과 일본의 오만으로 인한 한국인들의 분노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한국인들이 결국 일본 우익의 손에 놀아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요. 독도 문제를 이슈화하는 전체적인 목적은 한국인과 일본인들 간의 민족적인 긴장을 고조시켜 한일 양국에서 민족주의의 불길에 부채질을 하는 것 입니다. 때문에 이보다 더 일본의 우익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일은 없지요.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심대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또 한국이 문화적으로 생명력이 있고 역동적이며 젊은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한국의 최고 전략은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평화 공존을 추구하고 천박한 의도에 동요하지 않는 고상한 국가로 남는 것입니다.”

페스트라이시 박사의 선비같은 삶이 현대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한국 사회에는 어떤 지향점으로 남을지 자뭇 그의 앞길이 궁금해진다.

페스트라이시 박사는 필자가 부산일보 기자라고 밝히자 언젠가 꼭 부산에서 대학생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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