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国哲学家伯特兰•罗素(Bertrand•Russell,1872-1970)在1922年出版的《中国的问题》(The Problem of China) 一书中讲道,比起西方国家的“将个人的忠诚引导到战斗部队的爱 国主义”,儒教的孝道对于政府的运 营更具可行性。这句话包括了深刻的 意义。孝道提供了将个人与国家连接 起来的统合性哲学的可能性,让中国 得以维持充满人间之爱的国家管理制度。
I am not bothered by Koreans lacking certain “Western” habits and I think that Korea is plenty sophisticated in its own way. But there is one thing about Korea that really bugs me: the complete lack of concern for the impact of our actions on the environment. Most notably, we have seen a great enthusiasm for small plastic fans that can be held in hand, or even powered by smart phones. They sell for just 9000 Won. But no one seems to think about the impact on the environment of that unnecessary use of plastics (petroleum) batteries and other materials. Or the waste of electricity (generated by nuclear power, natural gas, coal or petroleum) required. The bottom line is that you can use your own hands to power a fan. No need for an electric fan. Such actions are indulgent and thoughtless when we think about the impending doom of climate change.
classic hand-powered fan and wasteful electric fan.Electric fans for sale
I visited Refuge P-Nan (피난처) to meet with three of the political refugees living there and meet with their hard working staff and a group of student volunteers. A total of eight political refugees live on site and there are education programs for other refugees in Korea as well. I was greeted by the director Lee Hotaek (이호택) who showed me around and explained me how the number of people applying for refugee status in Korea has increased rapidly and how the members of Refuge P-Nan work to help refugees settle into Korean culture and also to raise awareness among Koreans about the importance of supporting refugees. Director Lee told me that Korea was the first Asian country to pass a law on refugees and that although the numbers of refugees who are admitted is still low, that Korea has now surpassed Japan.
I spoke about my experiences as a foreigner in Korea and also discussed how war and climate change will make refugee issues central in this century.
I agreed that I would give talks for refugees in the future and make an effort to contribute to their projects. I feel strongly that the best way to avoid feeling sorry for oneself about the difficulties of living in a foreign country is to work together with people who face far greater challenges.
It was the fifth time I had overheard the same conversation from Chinese tourists visiting Gyeongbok Palace. One of the group remarked in a dismissive tone that Korean palaces are so small and simple compared with the impressive edifices that dominate the Forbidden City in Beijing.
Korean friends have confessed to me that they are a bit ashamed when they hear such remarks from Chinese visitors. But I have never felt there was anything to be ashamed about in the planning of the ancient city of Hanyang (Seoul). One of the greatest strengths of Korean democracy can be traced back to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and that was the clear limits on the power of the king that stood in notable contrast to the unlimited power of the emperor in China. The palaces, first Gyeongbok and then Changdeok, were designed to give the impression of dignity, but not to overwhelm the observer, or to suggest that the king had super-human status. In contrast, the massive Forbidden City, which by its very name implies it is off limits, Korean palaces are not much larger than the homes of the scholar officials on the northern side of the city (Bukchon) and the houses of the scholar officials are not much bigger than the homes of commoners.
나는 경복궁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하는 같은 말을 5번이나 들었다. 관광객 중 한 명은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의 웅장한 건물들에 비하면 한국의 궁궐은 아주 작고 소박하다”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한국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부끄럽다고 내게 고백한다. 나는 고성(古城) 한양의 도시계획에 대해 한 번도 그렇게 느껴 본 적이 없다.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조선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황제는 무한 권력을 휘둘렀다. 반면 조선 국왕의 권력에는 명백한 제한이 가해졌다. 우선 경복궁, 그다음 창덕궁에 적용된 설계의 목적은 ‘위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지 궁궐을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하거나 왕은 초인(超人)이라는 뜻을 내비치는 게 아니었다. 이름 자체가 접근을 금하는 베이징의 자금성과 달리 한국의 궁궐들은 북촌에 사는 학자 관료의 집보다 많이 크지 않았다. 학자 관료들의 집 또한 평민들이 사는 집보다 훨씬 크지 않았다.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만 봐도 서구에서 극단적인 정치 권력이 물리적 환경에 어떻게 표출됐는지 알 수 있다. 1900년께의 서울 사진을 보여 주면 학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타운하우스나 넓은 대로가 늘어선 당시의 파리와 비교하면 한국이 발전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 1860년대에 파리 개조사업을 진행한 조르주 외젠 오스만이 얼마나 지역 공동체에 대해 무감각했는지 알게 된다면 근대 파리의 변화가 무조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서울 궁궐의 소박함은 한국 유교 전통에서 가장 훌륭한 점을 표상한다. 한국의 왕실과 고위 관리들은 행실이 보다 투명했고 백성에게 보다 책임성이 있었으며, 공중에게 대표성을 발휘하는 방식이 보다 인간적이었다.
서울과 베이징의 차이는 14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국을 다스린 강력한 지도자들은 몽골제국 붕괴 이후의 무질서를 극복하고 권위를 확립하려 했다. 중국의 경우 영락제(永樂帝•1360~1424)는 혹독하게 통치했다. 극단적인 조치로 통치자와 시민 사이에 절대적인 거리를 강요했다. 영락제가 확립한 비밀경찰제와 상층부가 비대한 관료조직은 황제에 의한 군주정이 끝날 때까지 중국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영락제의 통치는 유교 전통을 왜곡시켰다. 또 신(神) 같은 존재가 된 황제는 거대한 관료집단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
반면 한국의 세종 대왕(1397~1450)은 시민에 대한 책임성을 그가 생각한 거버넌스 비전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가 상상한 왕은 왕국의 겸허한 종복이었다. 세종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높은 자리에 등용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세종이 평민의 복지를 정부의 최우선과제로 삼았으며 고도의 견제•균형체제를 수립한 것이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통치한 조선은 500년 넘게 생존할 수 있었다.
서울의 궁궐이 작다는 중국 관광객들은 조선 건축의 보다 인간적인 규모가 한국 문화 전통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측면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것이다. 영락제와 세종은 근대 초기의 제도 문화를 확립한 인물이다. 중국 관광객들 중에서 영락제와 세종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중국 관광객들의 무지를 탓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인 한국 철학•정치•예술•문학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하는 활동이 아주 미흡했다. 예를 들면 세종에 대해 많이 아는 내 중국 친구들은 극소수다. 바이두백과(百度百科)에서 세종에 대한 서술을 읽어 보면 전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지만 세종이 행한 개혁의 많은 부분이 빠져 있고 그의 공헌은 축소돼 있다.
18세기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 대한 바이두백과 항목은 더 심각하다. 다산의 지성사적 공헌은 지극히 짧게 소개돼 있다. 왕양명(王陽明)•주희(朱熹)와 어깨를 견주는 다산을 중국인들에게 소개하는 한국인들의 노력은 매우 미흡하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미래 문화적•정치적 위상을 확립하기 위한 싸움은 지극히 힘들 것이다. 결정적 요인은 ‘한국산 스마트폰을 몇 대나 팔았느냐’ 혹은 ‘중국에서 인기 있는 한국 남성 밴드는 몇이나 되느냐’가 아니다. 한국의 영향력을 좌우할 결정적 요인은 한국 전통에서 발견되는 투명성•책임성 전통을 어느 정도까지 보편적인 모델로 세계, 특히 중국에 제시할 수 있느냐다.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1980년대 한국의 투쟁에 대해 중국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틀림없이 한국의 오랜 투명성 전통과 왕의 권위에 대한 명백한 제약이다. 우리는 한국 유교가 16•17•18세기 선정(善政)에 공헌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교 전통은 한국뿐만 아니라 어쩌면 중국의 미래를 위한 모델이다. 한국은 아마도 그런 차원에서 중국에 영향을 줄 희망이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근래 들어 서울에서는 싱크탱크의 중요성이 회자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정책을 보다 현대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요인처럼 다뤄지면서 싱크탱크는 마치 선진국의 반열에 들기 위한 관문처럼 취급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제임스 맥간 교수가 만든 싱크탱크 색인에는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여러 싱크탱크가 들어 있다. 예를 들면 국립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방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그리고 민간 싱크탱크로는 동아시아연구원, 아산정책연구원, 세종연구소 등이 있다.
사람들이 중시하는 이 색인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재정과 인력규모 그리고 주요 기관지에 게재된 횟수다. 그러나 이런 싱크탱크들이 시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지, 그 연구결과는 실제로 건전한 사회 만들기에 효과적인지, 어떤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홍보가 아닌 공동성을 갖고 있는 분석인지에 대한 정밀한 심사는 없다. 물론 국립연구소는 공무원 개개인의 전문성을 위한 교육에 집중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 기후변화, 빈부격차, 빠른 기술발전의 영향에 집중하고 여러 배경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활발한 논쟁은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동아시아연구원 같은 민간 연구소의 경우 결국 재정규모라고 하면 싱크탱크가 기부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민간 연구기관 중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가장 두각을 보이며 여러 전문가 및 정책결정권자들을 초빙해 규모 있는 콘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근래에 나는 이 단체의 총회에 참석했다가 그 분위기가 너무나 폐쇄적으로 변한 데 깜짝 놀랐다.
포럼에서 나눈 이야기는 피상적이거나 의례적이었고, 기후변화나 양극화 심화, 혹은 서구사회에서의 극우세력 대두와 같은 중요한 현안은 다뤄지지 않았다. 젊은 학생이 몇 명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토론에 20대가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아산포럼에 초대됐지만, 내가 아는 서울에 있는 많은 전문가들은 이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해외에서 초대받은 인사들은 우리가 항상 보곤 하는 이들로 구성돼 있었다.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항상 군사동맹이나 자유무역협정 같은 화제만을 강조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되풀이해오던 북한 체제 붕괴와 같은 공허한 이야기만을 반복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이 전문가들이 이미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인정한 미사일방어 기술을 홍보하고,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유일한 접근법인 ‘전략적 무기 제한 협정’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한국 사회의 교육제도에서 학원이 담당하는 기능과 한국 사회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싱크탱크 집단이 하는 기능은 결국 같아지지 않겠는가? 사교육기관인 학원이 한국의 교육제도하에서 그들 스스로의 배만 불리며 교사가 학교에서 실제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주변화시키는 것과, 이런 싱크탱크 집단이 그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정책결정 과정을 민영화시키려고 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민간 싱크탱크들은 그 역량과 전문성의 부족으로 인해 정부관료, 국회의원 및 기타 정치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정부 산하의 연구소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간 싱크탱크가 정부보다 나은 역할을 한다는 건 한국을 보다 나아지게 하기보다는 프로세스의 중대한 요소들을 사유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 이익을 생각하는 싱크탱크 집단에 한국의 미래를 위한 연구를 맡기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한국은 분명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이 필요하며, 그 답은 교육혁신과 더불어 정부기관 내에서의 활발한 논의, 그리고 정부 각 분야 관료들의 의사결정에의 참여권 확대에 있다. 또 전문가 및 비정부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역사에는 춘추관이나 집현전과 같은, 이미 독립성을 갖춘 연구기관의 훌륭한 전례가 있다. 춘추관은 500년이 넘도록 정부 활동을 기록하였으며, 정책영역에서 좋은 전범이 되었다. 집현전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당대의 현안들을 공리적 관점이 아닌 윤리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기관이었다. 한국 역사에는 이처럼 윤리적이며 장기적 안목을 지닌 열린 기관의 전범이 풍부하다. 해외 싱크탱크의 경우, 좋은 사례도 있지만 문제점도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