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 ’19년 4월 연구토론회 ‘다가오는 공황 이번엔 다르다(발제 : 신재길)’ 소감.

*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 ’19년 4월 연구토론회 ‘다가오는 공황 이번엔 다르다(발제 : 신재길)’ 소감. *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 ’19년 4월 연구토론회 ‘다가오는 공황 이번엔 다르다(발제 : 신재길)’ 소감. https://cafe.daum.net/goflb/H59e/564 – 사전(事前)에 먼저 발제 내용을 읽고 갔다. 발제문 내용의 중심은 다가올 공황은 세계 패권국의 교체도 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대항해시대로 시작된 근세자본주의 동서인도, 남해 주식회사의 패권국은 네덜란드였다. 패권교체시기에 금융화가 두드러지고, 차기 패권국에 자본이 투자된다는 분석이었다. 1차 패권 교체시기(네덜란드→영국)에 유럽 영불의 100년전쟁과 프랑스혁명(공화주의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이 있었고, 2차 패권 교체기(영국→미국)에는 1, 2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혁명)이 있었다고 했다. 신재길 동지가 말하는 공황은 자본주의 공황이고, 패권은 곧 자본주의 패권을 말한다. 여기에 대한 나의 의견은 ‘패권국은 세계재벌(유대인 금융가 私人)의 최고 식민지’라는 것이다. 지금 미국을 세계패권국이라고들 하는데, 미국은 빈부격차 세계 1위이다. 그것은 사회체계(system)가 상당히 붕괴된 나라라는 것이다. 미국 역시 점령당한 나라일 뿐이다. 빈부격차 세계 2위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한(大韓)이(고, 3위는 멕시코)라고 알고 있다. 신동지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거품을 만드는 투기) 금융업은 기생적이고 자기파괴적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금융업은 자본주의의 꽃이고 피라미드 최상층부다. “가치창출이 아니고 가치이전이고” 가치는 결국 최고 포식자에게로 향한다. 대한의 모습을 보자. 임직원 평균 연봉 1억원 이상인 회사가 대한에 5개가 있다. 그 중 눈에 띄었던 하나가 삼성전자였고, 연봉 1억 5개 기업 중 3개는 금융업이었다. 그저께 “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았는데, 대한의 금융중심지는 역시 여의도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월가가 대한에서는 여의도다. 증권가찌라시라면 곧 여의도발(發)이 되겠다. 최근의 중요한 소식은, 대한의 서기 2019년 1분기 경제성장률이 -0.3%였는데, 이것은 10년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공황이 닥칠 징후로 보여진다. 자본주의는 공황을 극복해왔다. 공황은 작위적(作爲的)인 면이 있고, 재벌들은 공황을 통해서도 부를 더 독점하는 기회로 삼아 왔다. 패권국은 부의 서식지라고 표현할 수 있겠고, 패권국이 바뀌는 것은 서식지가 옮겨지는 것이다. 신재길 동지의 분석대로 다가올 공황은 패권국이 교체될 정도의 것일 수 있다. 나는 3차 세계대전을 거쳐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넘어갈 것이거나, 넘어가는 중이거나, 넘어갔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로스차일드를 필두로 한 세계금융재벌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주장(생각)에 마음을 열고, 동시에 모든 주장을 합리적인지 의심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패권국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패권에서 공산주의 패권으로 패권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할 당위는, 자본주의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타인과 경쟁을 조장해서 서로 미워하게 만드는 체제이고, 공산주의(사회주의)는 반대로 친절한 마음으로 서로 서로 돕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모든 각 개인들이 권력(무력)을 가지는 공화주의로부터 완성된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 자본주의의 위기와 해법, 그리고 진짜 해법.

* 자본주의의 위기와 해법, 그리고 진짜 해법. – – 자본주의의 ‘위기’는 거품(버블)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 위기를 거품으로써 해결한다. – 종이돈(거품)을 마구 찍어서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의 계속 반복이 자본주의 체제가 굴러가는 일관적인 모양이다. – ‘화폐’의 팽창은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그러다가 그 돈이 포식자의 입속으로 결국 다 빨려들어가면 “공황”이라고 …

[혁명시] 노예라고 다 노예인 것은 아니다 #김남주

[혁명시] 노예라고 다 노예인 것은 아니다 #김남주 노예라고 다 노예인 것은 아니다 김남주 노예라고 다 노예인 것은 아냐 자기가 노예라는 것을 알고 그게 부끄러워서 참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고 주인에게 대드는 자 그는 이미 노예가 아닌 거야 보라고 옛날 옛적 고려적에 칼에 맞아 죽을지언정 항복은 하지 않겠다 기어코 개경까지 쳐들어가 권귀들의 목을 베고 빼앗긴 재물을 도로 찾겠다 이렇게 다짐하고 들고일어섰던 망이와 망소이를 보라고 이렇게 노예이기를 마다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이제 노예가 아닌 거야 보라고 또 총칼로 왕후장상이 되고 안 되고 했던 그런 시절에 왕후장상이 따로 있는가 때를 만나면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노예들이라고 해서 모진 매질 밑에서 일만 하고 살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노비문서를 불에 태우고 이 땅에서 천민을 없애고 나면 우리도 왕후장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선언하고 동지를 규합했던 만적을 보라고 이렇게 노예이기를 거부한 그 순간부터 그는 이미 노예가 아닌 거야 노예가 노예인 것은 자기가 노예이면서 노예인 것을 깨닫지 못한 자야 깨닫고는 있으면서도 주인이 두려워서 노예이기를 거부하지 못하고 눌려사는 자나 주인이 던져주는 밥덩이의 크기에 배가 불러 돼지처럼 행복한 자야 그래서 노예는 노예시대에만 있었던 게 아냐 착취와 압박을 당하고 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깨닫고는 있어도 노예이기를 거부하지 못한 자는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오늘날에도 노예인 거야 그 대신 착취와 압박을 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게 부끄러워서 참지 못하고 싸우는 자 그는 이제 노예가 아닌 거야 해방자인 거야 해방자!

* “코로나사기 헌법소원 사건 재판의 진상” 책(보고서)을 펴내며

* “코로나사기 헌법소원 사건 재판의 진상” 책(보고서)을 펴내며––– 재판기록 500쪽.–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매우 큰 공적 가치가 있읍니다.–– 저는 서기 2022년 1월에 코로나사기 헌법소원을 제기했읍니다.–– 그 취지를 핵심적으로 요약하면,1. 2020년 경부터 치명적인 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대류행하고 있다며 국민 전체에게 강제로 입마개를 씌우고 강제로 코강간하고, …

*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고.

*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고. 서기2019.04.16 17:55 *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고.(초안) https://cafe.daum.net/goflb/H59e/562 – 내가 매주 토요일마다 참석하고 있는 ‘인물중심근현대사연구회’를 통해 접한 두 번째 순국선열은 ‘보재 이상설’ 선생이다. 첫 번째는 ‘김구’ 선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설’ 선생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분이었다. 일제의 ‘이등박문’을 총으로 쏴죽인 의열투쟁으로 후세의 존경을 받는 ‘안중근’ 선생이 순국 전 감옥에 있을 때 자기가 만난 사람들의 인물평을 했는데, ‘이상설’에 대해서는 식견이 깊고 넓다며 최고로 존경했다. ‘이상설’은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들 중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에서 최고위 관직(참찬)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헤이그(만국평화회의) 특사(밀사) 사건으로 가장 유명하게 알려졌다. 헤이그 특사 사건에서 ‘이준’ 검사가 순국한 것이 유명한데, 당시 ‘이준’ 검사는 부사였고, 그 정예 트리오(trio)의 정사가 ‘이상설’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상설’의 활약 중 가장 빛나는 사건이 헤이그 특사 사건이었는데, 그 전에도 특기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이상설’은 조선시대 고등고시에 해당하는 과거에 급제하여 잘나가는 고위 공무원이었다. 서기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 당시에 그는 고종 광무황제에게 “을사조약이 성사되면 나라가 망할 것이 분명하니까 친일 매국노들을 처단하고 폐하도 스스로 죽어서 순사직(殉社稷)하시라”는 파격적인 상소를 올렸다. 무력을 앞세운 일제에 의하여 을사조약이 강행되자, 그는 고위 관직을 버리고 상소투쟁을 계속하며 자결미수했다. 그가 자결미수하는 것을 ‘김구’ 선생이 목격하고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 가더라 하고 “백범일지”에 기록하기도 했다. 그 후 이북 러시아 만주지방으로 가서 서전서숙을 창설했다. 1년 정도 교육 계몽활동에 종사하던 중에 고종 광무황제의 헤이그 특사 정사로 선임된다. 고종 황제는 이상설의 상소를 보고 눈물을 흘렸고 여비는 어찌하나 혼잣말로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이상설’ 평전”에서 내가 가장 감동을 느꼈던 부분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결과론자다. 결과론자들은 위험한 현실에는 참여하지 않고 관망하면서, 현재 진행중인 중요한 사건을 지목하며 비관론을 말한다. 만약 그가 비관적으로 점친 사건이 좋은 결과가 되면, 나는 비관적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나도 내심 당연히 잘 되기를 바랬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가 점친 사건이 그의 말대로 나쁜 결과로 나타나면 입에 거품을 물 기세로 그러게 내가 뭐랬냐하고 자기의 현명함을 과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주의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를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조건 옳게 된다. 그러나 결과론자들은 절대로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고 자기의 인생을 현실에 순응하며 무가치하게 보내다가 그 구차한 삶을 마치는 운명이다. 그들은 그냥 비겁자일 뿐이다. 나는 밥먹다가 그런 사람이 떠오르면 밥맛이 떨어진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은 결과가 어찌되는 무조건 하고 살아야 된다. 그게 예술적인 삶이다. 고종 광무황제는 결과론자의 눈에는 망국 군주다. 광무황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퇴위를 당한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일제에 망했다. 결과론자들이 고종황제를 좋게 볼 리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고종황제는 역시 대원군의 아들다운 면이 있었다. 결과론자는 또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안중근의 폭력 테러는 결과적으로 큰 의미 없고, 한일합방이 앞당겨지는 빌미만 됐다고. 평범한 인간들은 결과론자의 비판이 두려우면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 어차피 망할 운명이었고 안중근의 복수는 우리 민족의 수치를 씻는 통쾌한 쾌거였다. 안중근의 쾌거와 순국 덕분에 후손들이 덜 쪽팔리는 것이다. 헤이그 특사 사건 역시 그와 비슷하다.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후세의 우리가 그나마 덜 부끄러운 것이다. 고종 광무황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젊은 특사 3인을 파견하여 일제의 야만적인 만행을 폭로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였다. 그 결과는 제국주의 열강 해적들의 외면이었고, 그래도 특사들의 주장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일은 일제의 입장에서는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그 헤이그 특사 파견의 의의로 을사늑약이 대한제국 황제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고 갖다 바친 것은 되찾기 어렵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이 특사의 선수였다면 미국인 호머 헐버트는 큰 기여를 한 “제4의 특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종 황제 역시 그 사건의 주역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고종 황제는 그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 받아서,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일제와 친일파에게 탄핵당하여 강제 퇴위 된다. 이준 검사는 특사활동 끝자락에 순국하고, 남은 두 사람은 궐석재판의 사형수가 되어 해외 망명객이 된다. 을사조약 내용이 외교권을 박탈하고 대한제국을 식물국가로 만드는 내용이었으니, 헤이그 특사 사건은 외교활동이었으므로 일제와 친일파의 입장에서는 을사조야꾸 위반이었던 셈이다. 이준 선생이 순국한 후 이상설과 이위종은 계속 세계 각국을 순방하며 외교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중에 특기할만한 내용은 미(합중)국의 태도였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내용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조약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이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될 경우 공동대처한다.” 그래서 이상설은 그 조약 내용을 믿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서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하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루즈벨트는 면담을 거부했다. 을사조약은 조미수호통상조약 내용중에 나오는 “제3국의 침략행위”에 해당되는데, 미국과 일본의 가쓰라-테프트 밀약 이후 미국은 일제의 편에 서서 조약의 의리를 저버린 것이다. 이렇듯 국가는 자주적인 역량으로 국제정세를 헤쳐나가야 하고 다른 나라의 힘에 의존하면 그 꼴을 당하고 망국을 당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미국에 군사주권 상납하고 대한은 미국의 무기 호구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없으면 “북한”에 망한다는 똥개 같은 논리를 펴며 미국에 메달리고 있는 꼴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의리를 저버렸던 의리 없는 미국을 “혈맹”으로 추켜세우고 일제 침략의 주인공인 일본과 한미일 삼각동맹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똥개같은 나라가 되어 있는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 내용에는 남북 쌍방의 외국군대와 무기 철수 내용이 있다. 미군은 수만명이 여전히 안 나가고 있고 미국산 무기를 계속 들이고 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만약 대한민국이 미국땅이면 미국은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 자기나라 속국에 자기들 군대와 무기를 들여놓는 건 이상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인민들은 미군을 축출하고 비동맹 독립 공화국을 세워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외교활동을 끝낸 ‘이상설’은 러시아에서 13도 의군과 대한광복군정부를 만들고 정도령(正都領)에 취임했다. 13도 의군과 대한광복군정부의 성격은 임정(臨政)의 전신이고, 총기로 무장한 의병 정부였다. 그리고 그 정부의 수장으로 고종 광무황제를 세우려고 했다. 대한광복군정부 밀사가 고종황제를 만나는데까지 성공했고 고종은 그에따라 러시아로 망명하려고도 했지만 일제에 발각되었다. 만약 고종 황제가 러시아 망명에 성공해서 13도 의군이나 망명정부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면 자칭 “광무(光武)” 황제 이름 값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광무 황제라는 이름이 좀 멋적게 되었다. 이상설 선생의 마지막 투혼은 신한혁명단이었다. 혁명단원 ‘성낙형’이 고종(전 황제)을 당수로 추대하기 위해 만나러 갔다가, 서기 1915년 ‘보안법(현재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걸려 검거되고 끝내 좌절되었다. 이상설 선생은 부유한 고위 관원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얻은 고위 관직도 버리고 구국의 가시밭길에 들어서서 망명 생활 중 독립운동으로 가산을 탕진하여 말년에는 생활도 곤궁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지만, 나는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좋다.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후손들이 모든 토지와 주택을 독점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체질을 ‘사회주의 시민 공화국’으로 빨리 바꾸어 내야 한다.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겨 보았다. 나는 ‘김삼웅’ 선생이 쓴 [채륜] 출판사의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었다. 가르침과 깨달음을 많이 준 아주 좋은 내용이었고, 한 가지 옥의 티는 138쪽에 약간의 오기가 있는 것이다. 이준 선생이 1895~1907로 된 것인데, 조사해보니 실은 이준 선생이 1859년생이었다.

* 별별 얘기 – 감기 기록.

* 별별 얘기 – 감기 기록. * 별별 얘기 – 감기 기록. https://cafe.daum.net/goflb/H59e/561 – 나는 1년에 한 번 꼴로 감기에 걸린다. – 올 해(서기 2019년)는 3월 23일부터 걸렸고, 지금까지 투병중이니까 거의 20일째다. 지금 거의 다 나아가는 중인 것 같다. – 3월 22일까지는 내가 세상을 전부 갈아마실 것 같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동월 23일에 특이하게 기억하는 것이, 저녁에 막걸리를 마신 일이다. ‘아스파탐’이 들어간 ‘장수 막걸리’를 마셨는데, ‘괜찮겠지’하고 마셨다. 그 후 밤부터 편도선에 냉기가 느껴지는 게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결국 그렇게 되었다. 막걸리를 마셔서 감기에 걸렸을 수도 있고, 막걸리를 좀 여러 잔 마셔서 그랬을 수도 있고, 냉(冷)한 음료를 마셔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또 켐트레일 미세먼지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도 경험을 축적시키면 좀 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다 나은 다음 아스파탐이 들어간 막걸리를 딱 한잔만도 마셔보고 관찰해보려고도 한다. – 감기에 뭐가 제일 좋을까? 병원과 약국 가는 방법 대신 이번에 여러 가지를 복용해 보았다. 쌍화탕, 깔라만시 차, 유자차, 용각산, 용각산 캔디, 허브차, 생강차, 등등 여러 가지로 시도했다. 가래를 염증으로 보고 염증에 좋다는 허브차를 마셨던 것을 특기한다. 그래서 내려진 판단은 그게 별로 안 좋았다는 것이다. 허브차 하면 피톤치드 느낌도 나고 아토피 같은 것에도 효력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감기에는 별로 안 좋았던 것 같다. 허브차와 용각산, 용각산 캔디 같은 것은 냉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중 개인적으로 제일 효력이 좋았던 것은 따뜻한 온수였다. 그냥 온수는 마시기 심심하면 녹차 같은 맑은(탁한의 반대) 차로 끓여 마시면 좋겠다. 그리고 옷을 따뜻하게 입고 실내 온도를 따뜻하게 하고, 얼굴과 입술 등을 보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 냉수를 벌컥 벌컥 마시는 것은 안 좋고, 온수가 좋고,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기타 기록은, 감기에 걸리는 것의 원인은 몸의 대사와도 연관이 있는 듯 하다. 몸 속에 배설물이나 노폐물이 쌓이면 몸 속에 까스가 차고, 감기 같은 냉증에 걸리기 쉽겠다. 그리고 나처럼 일 년에 한 번 꼴로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감기의 무의식적인 필요에 의한 주기성도 생각한다. 독감이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가래와 콧물로 노폐물을 배출하니까 감기를 거쳐서 몸이 정화된 느낌도 든다. 보통 피곤할 때 눈의 흰자가 탁해지고 눈꼽이 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흰자가 꽤 맑게 보인다. 어떤 면에서 멀쩡할 때보다 더 좋다고나 할까? 그래서 감기로 몸살을 앓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신비롭게도 오히려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서기2015년 #민중총궐기 경찰관폭행 조작사건] 공소기각판결청구

[서기2015년 #민중총궐기 경찰관폭행 조작사건] 공소기각판결청구 § 공소기각 판결 신청 § (2015년 #민중총궐기) https://cafe.daum.net/goflb/H59e/560 #이근수 #이원신 #김우정 #오윤경 #이성식 #박원규 #이상국 #임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