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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식민지의 역사는 오랜세월을 넘어 110년을 넘기고야 말았다. 탈출하지 못할것같은 식민지 역사를 되돌리면 절규하는 이들이 늘 있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김남천의 「남매」이다. 당시는 1930년대 일제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대고려의 언어, 화려했던 역사가 뺏기고 철저하게 왜곡되고 뒤틀린 시기이다. 미제 식민지 이전 마지막 인간성의 말살로 천손의 후손들이 다시금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조치였다. 개인의 양심을 팔아치우고 천민자본주의가 대고려 민족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한 시기이다. 남매는 그러한 역할에서 기본적으로 출발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봉근’은 상당히 특정 윤리적 딜레마에 대하여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우리가 비유적으로 들어가보면 상당히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볼수가 있다. 소년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돈으로부터의 인민의 해방’이었다. 단순히 돈은 천민자본주의의 상징일뿐 아니라, 인민의 해방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로스차일드가문, 록펠러재단, 소로스등등 거대 유대 악마자본(이하 ‘딥스테이트’로 표기) 역시 돈을 이용해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만큼, 악한 지배영역에 있는자들은 돈으로 인민을 죽이고, 선한 지배자나 민초의 선한 이들은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민을 살린다. 소년은 돈 때문에 인간의 실존마저 말살된 하나의 안좋은 상황에 대한 원망을 토해내면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천민자본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하나의 굴레를 벗으려는 인간의 절규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1948년 이승만 매국정권부터 2022년 문재인 살인정권까지 미제식민지 생활을 겪으면서 이러한 상황이 강해지는 것을 볼수가 있었는데, 수탈당하는데도 당하는지 모르고 민주주의가 도래했다는 거대한 착각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불가피하게 인간의 실존을 무참하게 박살내는 우리들은 어쩌면 이 소년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수가 있을 것이다. 소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식민지국가에서, 조금씩 대고려의 한민족에게 스며드는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절규하며 가족이라는 소중한 존재를 간직하고자 했던 11세 어린소년, 어쩌면 지금 딥스테이트의 코로나 사기를 포함한 인류 대량학살과 대고려, 그중 대한의 인민들이 살상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어젠다중 하나인 가족의 붕괴, 그리고 처참한 노예프로그램에 적응된 인간을 키우고자하는 부분이 맞닿아 소설속에서는 좋은 생선을 모두 팔아버리는 아버지와 좋은 몸을 모두 팔아버리는 누이의 소년의 절규를 이끄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였다. 소년의 후손이될, 아니 작가의 후손이될 대한과 조선의 수많은 인민들을 걱정하는 그러한 마음속 절규는 소설속에까지 스며들어 소년의 눈물, 분노라는 감정으로 발현되었으리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 실존하는 인간이 양심이 아니라 천민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나의 정신을 팔아넘겨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을 목적으로한 철학적, 윤리학적 관점에서 가히 가작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소년이 받은 상처는 이러한 맥락에서 출발한다. “봉근이는 모든 것이 더러워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누이―—모두가 더럽고 구려 보였다. 세상에는 숭고하고 신성한 것은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것 같았다.”라는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천민자본주의가 대고려 민족에게 뿌리깊게 들어가면서 양심을 박살내고, 모든 이들의 시선을 현실의 챗바퀴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그러한 일제의 강압적인 정책 하나하나는 11세 어린소년의 눈물을 만들고, 그 눈물을 피눈물로 만들고, 그의 가슴에 베인손에 김칫국물과 같은 쓰라린 경험과 생각을 형성하게 만든 것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되는 1930년대는 일명 일제의 ‘민족말살통치’시절로 불리는 시대이다. 천손의 후예인 대고려의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고 딥스테이트의 악마의 천하고 악한 정신을 주입하기 위해 빌드업한 시대가 1930년대부터 조선의 해방군이 미제식민지 대한으로 들어올 때까지의 시기이다. 그후 대한은 계속 실험국가가 되었고, 지금도 딥스테이트에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지않은가? 대한은 물질문명이 발달한 듯 하지만 식민지국가와 함께 그들의 어젠다에 철저하게 속고있는 상황이다. 자신이 벌어들인것중 가장 좋은걸 팔거나 절대 팔아서는 안되는 자신의 몸을 팔 수밖에 없는 이들이 널리고 널렸다. 고강도의 거리찢기, 강제적인 입마개착용, 독재 부역자정권의 독극물주입 등등 엄청난 노예프로그램 실험에 동원되고 있으며 인민을 죽이고 또 죽이는 켐트레일은 매일같이 뿌려지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GMO가 수입되면서 인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실존성을 잃어버린체 양심을 팔아넘기는 지금의 시대를 정확히 예측하기라도 한 듯 김남천 작가는 이를 정확하게 당시의 상황과 더블어서 설명하고 있다. 해당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양심을 팔아넘기면 자식이 개고생한다는 것, 그리고 식민지 국가에서 양심을 팔아넘기고 몸을 팔아넘기는건 부역이고 매국이라는점등등 많은 교훈을 전하고 있다. 카프문학은 좌파성향이 강하다. 사실 좌우이념 자체가 딥스의 어젠다 이기도 하고, 좌우중 한쪽만 지지하는 사람치고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투쟁하는 인간을 보지는 못했기에 좌익에 좋은감정은 안들지만 그럼에도 당시 카프문학계 사람들은 일제치하의 식민지국가를 벗어나기위해 부단히 애쓴건 공로로 인정해야함은 사실이다. 카프문학가 김남천 역시도 식민지국가에서 살아남을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매는 매우 우리민족에 중요한 사안을 다루면서 후일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마치 경고의 메시지라도 날리듯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의식있는 사람이면 알아듣기 쉽게끔 설명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해당 작품은 선각자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많은 후손들에게 교훈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작품자체의 내용과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출수도 있겠지만 문학이란는건 결국은 작금의 현실을 개선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도 작동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작금의 대한이 마주친 현실을 대입해보았다. 천민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면서 바이러스를 막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입마개를 착용하고, 독주사를 팔에 쑤시며, 줄서서 입과 코를 쑤시고, 거리찢기로 제한된 인원으로 모이는 이런 현상을 본 김남천은 우리에게 남매라는 작품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을까? 그리고 이러한 작금의 사태에서 노예화된 인민들을 깨우는 방식으로 무엇을 말할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실의 아우라는 우리를 비치게 되어있지만 결국 인민이 악한세력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가 우리의 방향성을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하는 소설, 김남천의 「남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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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 공산당 아고라 원문보기 글쓴이: 위버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