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일성’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를 통해 벗겨보는 항일혁명 영웅 ‘김일성’에 관한 반공세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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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한에서는 아이들한테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고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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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와 더불어”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 ‘김일성’ 부대 일행이 한창 고생하고 있을 때 어느 마을에 묵었는데, 당시에 전설적인 ‘김일성’의 항일빨찌산의 명성이 인구(人口)에 회자되고 있었고, 어떤 촌부가 ‘김일성’ 부대의 대원을 만나니까, 그 기회에 축지법을 쓴다느니하는 여러가지 신출귀몰 소문에 대한 것들을 캐물었다. 그 중 “김일성 장군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든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 그 때 ‘김일성’은 그걸 엿듣게 되었다.
– 평소에 진중하던 ‘김일성’의 부하는 이상하게 그걸 부인하지 않고 뻔뻔하게 그렇다며 맞장구를 치더란다.
– ‘김일성’은 어이가 없어서 나중에 “동무는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에 장단을 맞췄소?”라고 물으니까, 대답하기를 지금 우리 항일유격대는 핍박받는 조선 민중의 희망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괜히 ‘동심파괴’할 것 없다고 생각해서 그랬다고 했다.
– “솔방울 수류탄”은 “세기와 더불어”에 나오는 재미있는 일화(에피쏘드)일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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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짜 ‘김일성’이 보천보전투의 영웅 ‘김일성’을 사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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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김일성’ 설의 근거는 보천보사변 당시의 ‘김일성’은 20대 나이로 너무 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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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를 먼저 읽었는데, “백범일지” 중에는 만주에서 무장투쟁하는 “김성택” 부대를 존경하고, 자기는 힘이 부족해서 군대를 일으키지 못 하고 힘이 닿은 대로 테러 밖에 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하는 내용이 나온다.
– 나는 [김성택]으로 검색해보니까 그런 인물을 찾을 수 없었고, ‘김일성’으로 추정했다.
– 그런데, “세기와더불어”를 보니까, ‘조선은 살아있다 – 보천보의 불길’ 부분을 보니까 ‘김구’선생이 보천보사변 소식을 접하고 나서 ‘김일성’ 부대를 지원하려고 애썼고, “백범일지”의 기록과 일치했다.
– 보천보의 불길은 과연 조선을 말살하는 내선일체 정책을 벌이던 시점에서 조선은 살아있다는 것을 과시한 쾌거였다.
– 보천보 사변 이후에 일제는 공산주의자들을 검거했는데, “혜산사건”이라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시련을 못 이기고 변절하기도 하고, 불굴의 렬사들은 끝까지 시련을 극복하여 순교하기도 했다.
– 그런데, 그 가혹한 “혜산사건”의 조사 기록에서 조사 받은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서 20대 리더 ‘김일성’의 진정(眞正)이 증명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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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사건의 수사와 취조 및 재판과정에서 김일성의 신원도 분명해졌다. ≪사상휘보 思想彙報≫ 제20호에 실린 혜산사건 보고 부문에는 김일성에 관한 본명, 나이, 출생지, 항일무장투쟁 투신과정 등의 경력이 거의 완전히 파악되어 있어, 과거 일각의 ‘가짜 김일성’ 논란에 대한 명확한 반론의 증거가 되고 있다.”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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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일성’은 동족상잔 전쟁의 원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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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김일성’이 항일 무장혁명의 영웅인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럼에도 ‘김일성’은 남쪽에서 위인 대접을 못 받는다.
– 그 리유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6.25 전쟁의 상흔 때문이고, 남쪽에서 그 전쟁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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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1950년 고려반도전쟁을 남쪽에서는 “남침”이라고 주장하고 북쪽에서는 “북침”이라고 주장한다.
–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를 따지려면, 전쟁으로 누가 리득(利得)을 보았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 미국은 2차대전 이후 남은 무기 재고를 다 털어서 군수산업재벌의 배를 불려줬고, 일본은 군수지원으로 전후(戰後) 경제부흥을 이루어냈다.
– 남쪽에서는 “해방” 후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정부를 지지하던 사람이 77%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사법테러 등의 공포정치를 통해서 반공체제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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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와 더불어”는 조국 광복(光復)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 고려반도 전쟁은 그 이후의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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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1950년 6.25의 전날 남쪽의 군대가 38도 선을 넘어 침공을 감행했다. 북쪽의 군대는 그것을 격퇴하고 반격의 총공세를 개시했다.
– 북쪽의 군대가 38도 선을 넘어온 날이 6.2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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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날에 북침한 부대의 지휘관의 이름은 ‘김석원’이고, 맞서 싸운 부대의 지휘관 이름은 ‘최현’이다.
– ‘김석원’은 일제괴뢰군의 장교 출신이고, ‘최현’은 항일 빨찌산 지휘관 출신이다.
– 고려반도 전쟁 당시 특이하게 남북의 장군들이 다 30대 쯤의 젊은이들이었는데, 남쪽은 다 일제 장교 출신이었고, 북쪽은 다 항일 빨찌산(인민혁명군) 출신들이었다.
– 지금 “한미일 삼각동맹”은 그런 정황으로 봤을 때에는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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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공에서는 연인원 60만명의 인민지원군을 보냈고, 그 중 거의 1/3에 해당하는 18만명이 전쟁 중 전사했다. 그 중에는 ‘모택동’ 주석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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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전쟁 발발 정황에 관한 ‘김일성’의 진술은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연설문을 보면 참고할 수 있다.
https://unibook.unikorea.go.kr/material/view?mGubun=1&method=KEYWORD&fields=SUBJECT&keywords=%EC%97%B0%EC%84%A4%EB%AC%B8&dataTypes=82&page=7&uid=CAT-00000000000040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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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및 항일 무장혁명군은 말 그대로 구사일생(九死一生)의 처절한 항쟁을 한 순국선열들이었고, 천신만고를 겪었다.
– ‘김일성’의 부모도 독립운동가였고, 30대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김일성’의 동생 ‘김철주’도 독립군으로 싸우다가 20세에 전사했다.
– 너라면 그럴 수 있나?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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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나도 반공교육의 세례를 받아았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중립기어를 놓고 판단하기는 힘들 것이다.
– “세기와 더불어”는 우여곡절 끝에 남쪽에서 정식출판이 되었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다.(사상의 자유)
– 개인적으로는 “세기와더불어”가 아름답고 인간적이어서 “성경”보다 위대하다고 느낀다.
– 나는 2018년에 “대한공산당 창건 발기 선언”을 발표했는데, 2019년 1월 4일에 국가보안법 제3조 제1항으로 고발당했다. 그해말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 됐는데, 국보 3조 1항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다.(결사권)
– 우리가 과감하게 행동할 때 당당한 권리 영역이 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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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대로 량심것 써보았는데, 지식이 부족하고 표현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 더 잘 아는 분은 가르쳐주시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