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리라 – 장기수 박희성 선생의 독백

고향으로 가리라

– 장기수 박희성 선생의 독백

김태철

금덤판 노동자들의 삶은

생지옥 아닌 곳이 없었다

내고향 박천에 맵짜한 금덤판 바람이 불고

구역질 나는 양코배기와 비린내나는 왜놈 앞잡이들은 흡혈귀가 되어 마리화나와 히로뽕으로 온몸을 잘근잘근 녹여가며

때로는 투전과 외상술로 식민지 노동자들의 고혈을 남김없이 빨아먹었다

해방이 되고

중학교 먹물까지 먹은 내 친구들은 이팝꽃처럼

앞다투어 자원입대를 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고

왜놈들이 갈고리처럼 빼았었던

내나라 내겨레를 위해

인민을 위해 싸우는 인민군대를 찾아 연초록 이파리처럼 달려나갔다

최현군단장은 나이어린 학도병 인민군대가 우리 조국의 내일이라며 한껏 칭찬을 많이 해주셨고

언제나 사병들과 함께 하였다

인간다운 대접,

넉넉한 웃음으로

호탕하게 함께하며

적들에 대해서는 불을 뿜는 분노로 일격필살의

독립군 본떼로 싸워나갔다

최현의 부대답게

마지막 한 순간까지

쩌렁쩌렁한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노라며

나는 화선입당을 하였다

나는 인민을 위해 싸우는

조선 인민군대이다

나는 인민을 내몸처럼 돌보는 조선노동당원이다

미제를 타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전후복구의 벅찬 노동과 투쟁에서 착하고 순한 도라지꽃같은 내 아내 순옥의 손을잡고

트럭을 먹고 영사기를 돌리며 천리마의 고고성을 올릴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 동철이가

애기똥풀처럼 샛노랗게

태어났다.

첫돌을 지내고

인차 조국의 떨리는 부르심을 받았다

화성 앞바다까지

기관선을 끌고

낮은 해로의 갯냄새가 그득했다

새벽 퉁퉁마디와 칠면초 가득한 화성 서신면의 갯벌이 짭조름하다

와야할 지도원은 오지 않고

밀정의 배반으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내 따발총에 불이 뿜었다

이윽고 총알이 떨어졌다

빛을 잃었다

감옥 안에서 포로의 대우는 없었다

제네바 협정은 유린되기 일쑤였다

오직 피비린내나는 전향공작 놀음으로 동지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 갔다

조국의 진달래를 찾아왔던

항일무장대오의 첫마음으로

하얀 눈이 내리는 이름모를 남녘의 철장안에서

청춘을 모두 보냈다

1988년 전주 감옥에서

나는 출옥했다

그 눈부신 햇살

살고 싶었다

생존하고 싶었다

눈에 아른 거리는 동철과

사랑하는 아냐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이인모동지가

그 후 수많은 동지들이 고향의 품에 안겼다

김선명동지부터

모두 비전향 장기수

신념의 강자들이었다

별아 떨어졌다는 낙성대에서 세월이 흘렀다

곧 다가올것 같던

겨레의 통일은

신기루처럼

점점 멀어져 갔다

남과 북의 관계도 닺혀버리고

북미관계도 핵대결로 치달렸다

평양의 통일탑들이 무너지고

남북을 오가던 도로들이 폭파되었다

내 나이 구순이 되도록

걷고 또 걸었다

언젠가 찾을 내고향 내아들 내가 묻힐 북부 조국

지금은 밝은 단군왕검의 산천

잘생긴 고인돌 바라보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진

배달나라 그곳에서

내발로 걸아가 묻히고 싶었다

지팡이라도 의지하며

대성산 그리운 동지들이 잠든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인사하고 싶었다

동지들

고향으로 가고싶다

가서

70여년이나 고향을 가지 못하게 가로막은

미국놈들의 야수성을

70여년이나 아들도 못보게한 미국놈들의 악랄함을

똑똑히 증언할 것이다

단호히 단죄할 것이다

망나니들의 칼춤을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발가벗겨버리고 싶었다

동지들 꼭 전해 주시오

나 죽으면

넋이라도 고향으로 갈 터이다

가서 내 인생 그래도

티없이 깨끗한 양심 지키다가

미련할정도로 우직하게

최현군단장님과의 화선에서의 약속을 지키다 갔노라고

꼭 꼭 전해주시오

2024년 10월 30일

영면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