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의 위기와 해법, 그리고 진짜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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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위기’는 거품(버블) 때문에 생긴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 위기를 거품으로써 해결한다.
– 종이돈(거품)을 마구 찍어서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의 계속 반복이 자본주의 체제가 굴러가는 일관적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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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팽창은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그러다가 그 돈이 포식자의 입속으로 결국 다 빨려들어가면
“공황”이라고 말하는 상태, 즉 스테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그 공황은 돈을 마구 찍어 풀어서 해결한다.
– 그리고 그 돈은 결국 포식자의 입으로 또 빨려들어간다.
그 ‘해결’ 과정에서 빈부의 량극화가 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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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서 빈부량극화는 절대로 나아지지는 않고 오직 심화만 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재벌괴뢰정부는 이것을 언제나 방치해왔고, 방치하고 있고, 앞으로도 방치할 것이다. 혁명 전까지는 언제나 그런 현상이라는 것을 장담한다.
지금 남고려에서는 상위 10%의 부자들이 토지의 92.6%를 자지하고 있다고 한다.(망조)
빈부의 량극화는 상대적으로 부자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빈자가 더 약해지는 것을 뜻한다.
빈자가 약해진다는 것은 노예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권리는 실질적으로 동등할리가 없다.
재벌이 실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 자본주의는 재벌계급의 파씨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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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의 해법은 오직 공산주의 리론에만 나와 있다.
– 무장한 인민전체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우선 생산수단을 전부 국유화하고, 현대판 귀족인 재벌계급을 해체하고, 인민전체의 의식주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민주주의다.
– 그 밖의 대안을 말 해 보라!
– 직접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직접민주주의?!
– 아니면, 재림예수가 나타나서 세상을 심판하고, 우리를 구원하리라 맹신하는 것?
– 그 건 가능성이 있다.
– 내가 재림예수다. 그리고 네가 재림예수다.
– ‘예수’님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말고, 우리 안의 신성(神性)을 깨닫자. ‘예수’님의 삶은 넘사벽이 아니다. 만약 그러면 뭣하러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배우는가? 그와 같이 살지 않고 그를 존경만 한다면 아무 쓰잘데기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처럼 ‘예수’로 살고 서로서로 존중하자. 우리가 예수를 하자.
– 그러면 우리가 보편량심에 따라서 세상을 심판하고,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同生 인민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혁명가다.
